스물여섯,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그러나 한창 젊을 때 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꼭 해보자는 심정으로 떠난 자전거 지구 한 바퀴 여행.
고진혁씨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젊은이들이 꿈을 갖고 그 꿈을 실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으리라.
제천시 화산동에서 ‘투덕’이라는 작은 오리주물럭 전문식당을 하시는 부모님에게 손벌리기 싫어 캐나다에서 9개월여 워킹홀리데이 등으로 여행경비를 마련하는 등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여행기간 동안 많은 고생도 했지만 덕분에 얻은 것이 더 많았다는 고진혁씨는 여행 중에 미국의 오클라호마주 지역신문과 인디애나주 지역신문에 소개돼 대한청년의 기개를 칭찬받기도 했다.
고진혁씨의 자전거 지구한바퀴 여행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오클라호마주 지역신문에 소개된 고진혁씨

멈춰있던 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그 곳’
세계일주를 꿈꾸다.

지금으로부터 3년 6개월 전, 나라를 위해 군인 신분으로 지낸지 어느덧 1년이 흘렀을 때였다.
스치듯 짧지만 아주 강렬하게 한 풍경사진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하늘과 땅의 경계는 사라지고 별들이 하늘과 땅을 수놓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이미 ‘그 곳’에 있었다.
그 곳의 이름은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
우유니 소금사막에 ‘독도’를 알리는 깃발을 꽂고 싶었다.
난 그렇게 ‘그 곳’에 가기 위한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막연하지만 태연하게 말이다.

시간, 돈, 여유가 필요했다.

우유니 소금사막에 내 영혼까지 빼앗기고 나니, 당장이라도 우유니 소금사막에 가고 싶었다.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시는 ‘사리분별’이 안가기 시작했다. 이 ‘사리분별이 안 가는 짓’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여유가 필요했다. 우선 휴학계를 내는 것으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돈을 버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워킹홀리데이라는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시간과 돈과 가장 중요한 여유를 찾기 위해 2012년 12년 27일, 한국을 떠나 아무 연고 없는 북미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캐나다는 볼리비아와 같은 아메리카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내 멀쩡한 사지와 ‘그 곳’에 가고 싶다는 끌림뿐이었다.

세계일주의 시작
아메리카 대륙이 얼마나 큰지 직접 내 두 발로 확인하다.

홀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세계일주에 필요한 여행자금을 내 힘으로 모았다. (약 1700만원)
그리고 우연히 자전거로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한다는 다소 황당하지만 가슴 설레는 뉴스를 접했다. 결국 자전거를 구입했다. 심지어 비행기 표보다 더 일찍.
2013년 10월 1일 미국 동부 뉴욕에서 출발, 미국 서부 샌디에고 그리고 캘리포니아까지 12월 23일까지 자전거로 미국 횡종단을 했다.
감동적인 에피소드들 너무나 많아 아직도 그때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미국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 엘크시티를 지나칠 때였다.
밤 10시가 넘어 다음 도시까지 달리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 근처 마을에 들어가 무작정 아무 집에다 노크를 했다.
열 채가 넘게 낯선 이들의 집에 노크를 해가며 마당에서 자도 되는지 여쭤봤지만 모두다 “NO!!”라고 했다.
그렇게 정말 대책 없던 그 순간, 아… 이 느낌, 대학교 다닐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는데 기대한 결과가 없어 내 스스로 작아졌던 기억.
그 낭떠러지의 순간 눈에 들어온 건 처음 노크하려다가 포기한 ‘첫번째’ 집. 뉴욕에서 어렵게 만든 내 여행명함, 그리고 깊은 심호흡과 함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고 나오신 아저씨께서 나에게 건넨 한마디 'Do you like hot dog?!!'
감정이 북 받치고 해냈다는 생각에 핫도그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처음 자전거 여행의 계획은 횡단을 마친 후 자전거를 한국으로 보내고 남은 기간은 자전거 없이 배낭여행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온 몸으로 부딪치고 깨달았던 그 짜릿함이 너무도 소중해 남미 배낭여행 후 독일에서 다시 자전거를 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독일로 자전거를 보냈다. 어떻게든 지구 한 바퀴는 꼭 돌고 가야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독일에서 자전거와 함께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든 굴려보자. 안 굴러가면 시베리아 횡단열차타고 가면 되지 뭐. 나 스스로를 설득시키면서 남미로 향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깨달은 것들.

1. 언덕에서 그 다음 언덕을 바라보면 알프스처럼 높아 보이나 직접 그 언덕에 다가가면 생각만큼 높지 않다.
2. 주행거리를 보면 금방 지치는데 주행시간을 보니 더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다.
3. 내리막을 싫어하게 된다. 언젠가는 다시 오르막이 나타날 것임을 알기에.
4, 앞뒤로 무거운 짐이 달려있는 자전거를 볼 때면 부모님이 떠올라 슬퍼진다.
5. 열심히 미래를 예측, 계획해 보지만 절대로 그대로 흘러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6. 남은 일정이 촉박하다고 느껴 소중한 인연으로부터 쉽게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가장 후회스러웠다.
7.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8. 세상엔 따뜻한 사람이 정말 많다.
그리고 나의 꿈이자 목표인 ‘우유니사막에 독도 깃발 꽂기’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캐나다를 떠나기 전 제작해 둔 독도 깃발을 택배로 받았다.

▲ 꿈꾼지 3년 만에 우유니 사막에 나의 독도 깃발을 꽂다

드디어 우유니사막으로 향하다.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2013년 12월 23일부터 2014년 4월 7일까지 나는 중남미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멕시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파라과이, 브라질까지.

꿈꾼지 3년 만에 우유니 사막에 나의 독도 깃발을 꽂다.

4년 전, 우유니소금사막에 꽂혀 있는 만국기 사진을 보며 “내가 만든 독도깃발과 태극기를 걸면 어떨까?” 했던 그 소박한 꿈을 막상 이루고 보니 공허했다.
오랫동안 간절히 소망했던 꿈을 이루면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았는데 오히려 공허한 기분이 들다니……. 상상 속에서만 펄럭이던 독도 깃발이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펄럭이니 이상하게 허무했다.
누군가 폭죽이라도 터뜨려 맑은 하늘에 별들을 수놓아 줄줄 알았던 건가.
26년 동안 살면서 정말 수도 없이 듣던 말, 꿈을 꿔라! 꿈이 뭐냐! 마치 ‘꿈’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하지만 그 소박한 꿈을 이루고 나니 꿈을 이뤘다는 짜릿함보다 꿈을 꾸면서 도전하고 경험했던 과정들이 더욱 나를 설레게 했다.
그렇게 나의 작은 소망 이였던 ‘우유니 독도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른 남미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다.
과정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그 이후의 여행은 그 전과 달랐다.

남미여행 중 계획한 자전거 유라시아여행

관광지보단 유명하지 않은 작은 시골동네라도, 배낭보단 자전거로, 관광이 아닌 여행으로, 빠름보단 느림으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 그리고 독도프로젝트.
독일에서 독도까지 자전거와 함께하는 유라시아 자전거여행.
우리가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의 지장을 받아 독도그림을 그려 나가는 게 나의 이번여행의 큰 계획이었다.
유럽의 국경을 넘을 때마다, 꼭꼭 숨어있는 입국표지판을 찾을 때마다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괜스레 서러움이 느껴진다. 그 넓은 지구에서 왜 하필 우리나라만 분단되어 있을까? 언젠간 걸어서 외국을 갈 수 있는 일이 왔으면 싶었다.

자전거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타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독일에서 동쪽 끝인 마지막 독도까지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4일 동안의 기차여행. 이제 정말 귀국을 하는구나 실감이 난다.
앉을 수도 없이 낮은 열차의 좁은 침대에서 눈을 감으니 아메리카 대륙, 유럽을 지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 오면서 쌓인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한 페리를 타고 2014년 7월 24일 오전 10시에 한국 동해로 돌아왔다.
575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던 그 날, 묵호항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편을 구하려고 했으나 장마시작이라는 예보를 듣고 8월 15일경으로 독도 들어가는 날짜를 미뤘다.
세계일주 하기 전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을 믿고 참는 삶을 살았지만 지금의 나는 ‘하고 싶으면 해야 할 때가 있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는 마음에 담고 내키면 저지르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