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천시 체육진흥과이 재 광

요즈음은 처갓집의 눈치를 보며 사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뉘라서 처갓집 식구들을 가까이 하지 않겠는가마는, 특히 막내 처제 생각만 하면 항상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처갓집은 강원도 영월에 있으며 장인어른은 성실히 농사만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인명은 제천이라고 어느 날 장인어른은 산에 가서 꼴짐 한 짐 하시고 점심으로 만둣국을 드신 후에 낮잠을 주무시다가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말았으니, 그때의 막내처제는 겨우 막 돌을 넘긴 나이였다.
그 당시 처갓집 식구들 가운데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장모님 혼자뿐이었다. 큰처남이 장성했지만 군에 입대해 있었다.
장모님은 어린 자식들을 위해 남의 집으로 품팔이하러 다니셨고, 강가에 나가 다슬기를 채집해 팔았다.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남이 빌려주면 옥수수와 감자를 심어 간신히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또한 가을이 알록달록한 빛으로 산천에 내리면 산으로 다니며 땔감을 해다가 마당에 쌓아 놓아야 했으니, 그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장모님은 주렁주렁 달린 육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애썼다. 어떻게 하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려고 당신의 입에 들어갈 한 움큼의 밥이라도 아껴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는 고된 생활을 견뎠다.
2남 4녀 중에서 큰처남을 결혼시켰고, 그 위로 딸 세 명도 모두 출가시켰다. 그 중 둘째딸이 바로 나에게 시집온 것이다. 작은 처남은 형편상 나한테 와서 ! 고등학교를 마치고, 소방분야의 대학교를 나와서 현재 소방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막내처제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서울에 있는 언니한테 올라갔고,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유선방송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언니 집에 얹혀살자니 형부의 눈치도 봐야 했을 것이다. 열아홉 살의 나이에 과감히 독립해 나와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처제는 무척 외로웠을 것이다. 서울에서 남자를 만났고, 그에게 정을 깊게 느끼고 사랑에 빠졌다. 결혼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에 직장과 능력도 없는 남자와의 결혼을 모두 반대했다.
그러나 한사코 결혼하겠다고 버티는 처제는 이미 임신 4개월에 접어들었으니, 큰처남은 홧김에 처제에게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러오는 배를 보며 양가의 부모들은 할 수 없이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문제는 처제의 남편인 동서가 이상한 역마살이 끼었는지, 어떤 직장이든 삼 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제는 아기 아빠라고 주변에서 타이르기도 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을 꼭 묶어서 살림을 제대로 해 보라는 의미로 광명시 뒷골목에다가 야채장사를 하게 했으나, 툭하면 동서는 방구석에서 꼼짝도 안하고 박혀있었고, 설상가상으로 폐결핵에 걸려 일년 간 약을 먹으며 요양해야 했으니, 두 명의 자식까지 딸린 처제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자신이 우겨 선택한 길이었다. 자존심에 친정식구에게 말조차 못하고 고생을 혼자서 감당했으니 그 가슴이 오죽했을까, 그러다가 결혼 4년 만에 작은 딸아이를 뇌수막염으로 저 세상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래저래 처제는 혼자서 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불행은 겹쳐오는 것이라지만 도대체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별안간 목이 아프다고 진통제만 찾는 동서가 이상해 처제가 동네의 병원에 데려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는 바람에 철렁하는 가슴으로 종합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후두암이었다. 이미 암세포가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었기에 오래 살아야 6개월이라는 진단이었다.
이제 처제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남들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내막을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삶의 막다른 길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처제의 절박한 심중만 가늠할 뿐이었다.

열심히 기도했다. 비록 자신에게 고생만 안겨준 사람이지만 그래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새벽길을 밟아 교회로 향했다. 시집과 친정집은 대대로 불교를 신봉하는 집안이었기에 평범한 교회도 아니고, 이단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교회에 다녔으니 이래저래 처제는 양가에서 미운 짓만 골라하는 격이었다.
처제는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예감했던 대로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해지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남들 보라는 듯이 더욱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마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틈만 나면 교회로 달려갔다. 그러나 동서는 진단을 받은 지 5개월 만에 눈을 감았다.

벽제 화장터의 화장로 속으로 지지리도 못난 남편의 시신이 빨려 들어갔다. 철컹 철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얼마 후에 철문이 열렸다. 하얀 백골이 모습을 드러냈고 처제는 혼절하듯 통곡했다. 시아주버니는 제대로 남편구실도 못한 동생이 미워서 그랬는지 유골을 산에 그냥 뿌려버리려 했다. 이것을 보고 처제는 깜짝 놀랐다.
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고 울며불며 매달리고 통사정했다. 자식도 있는 아빠인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냐고 시아주버니에게 사정사정하며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자고 매달렸다. 시아주버니는 지그시 눈을 감고는 그렇게 하자고 허락했다.

이 광경을 모두 본 나와 식구들은 허전했다. 입을 여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묵묵히 돌아오며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부처님, 아니면 하나님, 처제에게 힘을 주십시오. 좌절과 절망의 강을 건널 힘을 주세요. 그리고 체제, 이제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힘 내 하고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