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중학교장. 수필가
이 성 범

교정에 노오란 은행잎이 가녀린 소망을 싣고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환영하고 축복이나 해주듯 살랑 살랑 춤을 추며 온갖 애교를 부리곤 한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사랑의 몸짓이 어제만 같은 데 어느새 짓궂은 바람 녀석의 심술보가 터졌는지 간간히 불러오는 바람에 연약한 은행잎은 참고 온갖 몸부림을 치다 못해 그만 땅위에 몸을 맡기고 만다. 보는 이마다 가슴이 시리다. 그리고 한없이 심술궂은 바람 녀석이 밉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다른 새로운 변신을 위해서는 어쩌면 건너야 할 강이 아닌가 생각하니 조금은 용서의 마음이 든다. 이러한 아픔의 고통이 없이는 새 삶의 장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리라.
어디 이 새로운 변화와 더 큰 세계로의 성숙을 위한 몸부림이 비단 자연에게만 있으리요? 우리 인간에게도 어쩌면 같은 삶의 여정이 있는 것 같다.
무릇 우리 인간이 성숙해 지기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아이는 아이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그 삶의 현장에서 더 큰 몫을 감당키 위해서는 강을 넘어야 하는 과정이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의 일부가 우리 학생들에게 다가온 대학입학수학능력고사가 아닌가 한다. 우리 고장에서도 4개 지구 30개 시험장에서 16,000여명이 응시한다.
정말 시험 앞에는 누구나 마음이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다. 시험장에 들어서는 순간 담장에 걸려있는 수없는 격려문이 또 설레게 한다.
그런가 하면 선후배의 따뜻한 사랑의 따스한 차 한 잔이 제법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기도 한다.
그것도 잠시 시험장에서 들려오는 예비종소리가 또 숨을 가쁘게 한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하여 아무리 침착 하려고 해도 시험지를 받아드는 순간 가슴은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한다. 하지만 이일은 나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수험생인 친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내심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감을 가지고 그동안 갈고 닦아온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답안지에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한 점의 후회도 없이 말이외다.
참으로 오늘 이 순간까지 우리 학생들 숨 가쁘게 뛰어왔다. 어쩌면 오늘 이날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달콤한 휴식을 멀리한 채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졸리는 눈을 비비며 책장을 수없이 넘겨왔다.
생각해볼수록 장하고 자랑스럽다. 우리 학생들이 말이외다.
그런데 이 두려움과 초조함이 어디 수험생 뿐 이리요.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 또한 별다른 차이가 없다. 몸은 같이 가서 시험을 볼 수 없지만 그 속내는 수험생이상 시간이 지날 때 마다 검게 타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곳곳에서 수험생을 위해 나름대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보는 이마다 가슴이 저미어 온다.
모두가 내 자식인 것을 말이외다. 그래, 이것이 이심전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외다. 심지어 가던 행인도 발을 멈추고 함께 마음속으로 수험생을 위해서 기도해 본다.
어느덧 수험장에서 한 과목 한 과목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수험생은 물론 밖에 서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까지 초조함과 설레임 그리고 두려움으로까지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감사가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가 이렇게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잘 커준 자녀에게 감사하고 잘 가르쳐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좋은 환경에서 배움의 길을 열어주신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에게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분명 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삶의 끝이 아니요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열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도전이 있을 수 있고 소망이 넘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 수험생들이 최선을 다해 조금도 후회 없는 아름다운 답안지를 작성해 주기를 기도해본다. 늘 이맘때가 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