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중학교장. 수필가

이 성 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조리있게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통의 부재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를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는 언어구사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음성언어인 말(言語)이든 문자언어인 글이든 모두가 중요하다.

아주 어릴 때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다닐 때 아침 운동장 조회를 할 때면 으레 교장선생님께서 교단에 올라오셔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훈화말씀을 하시는데 어떤 교장 선생님은 말씀 도중에 ‘ 어, 예,’ 하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시는 교장선생님을 지금도 가끔 기억나곤 한다. 왜냐하면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 역시 사랑하는 제자들앞에 간혹 훈화할때가 있는데 나 역시 당시 훌륭하셨던 은사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는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1대1 대화이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의 대화는 크게 긴장하거나 시끄러운 일도 없어 말하는 사람이 도중에 할 말을 잊어 당황해 하는 일은 그리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앞에 두고 강당이나 회의장에서 말을 할 때는 아무리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을 하는 도중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갑자기 다음에 할말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일이 생기면 누구나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많이 강단에 서본 사람이고 재치있는 사람이라면 유머 한마디 정도 꺼내면서 다음대화를 준비하지만 그 정도의 테크닉을 부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재빨리 탁자위로 시선을 돌려서 준비한 원고를 확인해야한다. 그런가 하면 또 너무 흥미롭게 말을 하다보니까 엉뚱한 방향으로 말이 흘러 갈 수도 있다. 일례로 강연이나 강의시 듣는 사람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다보면 말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신이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계획도 없던 말을 하게되고 분위가 고조될수록 말하는 주인공은 신이 나서 자칫 테마에서 벗어난 경험담이나 사례들을 말하게 되기도 하는 등 듣는 이들의 기분을 즐겁게 하려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게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로는 여러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경우이다. 질문을 받다보면 그 중에는 엉뚱한 질문으로 분위기를 다른쪽으로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하고자 하는 테마를 벗어나게 되는 경우도 간혹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적당히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준비한 원고를 한번 확인한 후 다음 내용으로 이어가야 한다.

이 때문에 아무리 달변가라 할지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테마를 어느 정도는 사전에 메모하여 개요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자신의 머릿속에 이미 담겨 있는 지식이어서 굳이 메모장을 보지 않고서도 말하는 데 지장이 없다하더라도 강연내용전체를 적을 필요는 없겠지만 주제의 핵심어로 개요를 작성하는 것이 작은 실수를 예방하는 길이다.

지금도 학생조회때 훈화차례가 되면 사랑하는 제자들을 대하지만 가슴이 두근두근하기는 마찬가지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자신이 말하고자는 주제에 대한 개요을 작성하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의 방법일 수 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