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가 허세강

오늘 아침 하소리 약수터를 향해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인 이른 시각이었지만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뿌연 먼지가 종아리를 휘감았습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그토록 생명력이 질긴 잡초 마져 늦가을 된서리를 맞은 듯 잎파리를 아래로 떨군채 흐물흐물했습니다.
새날을 맞는 이름 모를 산새들의 합창소리도 오늘따라 들리지 않았습니다. 산 아래 논의 벼는 푸르름을 더해가기는 커녕 바닥이 메말라 끝이 하얗게 타들어 가고 바닥은 거북등처럼 갈가리 찢기고 갈라져 차라리 황무지 같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左氏傳에 나오는 野無靑草도 未久不遠이 될 것 같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천지신명님!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2001년 辛巳년 大旱이래 겪는 너무나도 지독한 가뭄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 땅에 비다운 비 한번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대지가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식물이란 식물은 모조리 시들어가고 농작물이란 농작물은 모두 뿌리째 말라 배배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관장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신명님이시여!
어서 빨리 이 땅에 비를 뿌려 주시옵소서.
우리는 지금 일분일초의 촌각을 다투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식수마저 부족해 자동차로 배달급수 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님께서 창조하신 억조창생을 이대로 모두 죽게 놔두실 요량이 아니시라면 지금, 바로 지금 이 땅에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無所不爲의 절대 권능으로 천지를 다스리는 님이시여.
님께서는 能히 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토록 망설이십니까?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 어지럽고 가관이라서 그러십니까?
책임지고 앞장서서 일하겠다는 『일꾼』은 없고 남의 말꼬리 잡고 늘어져 말로만 세상판을 짜려는 『말꾼』들만 득실거리니 얼마나 아니꼽고 禍가 나시겠습니까? 하지만 어찌하옵니까?
만약 미운자가 있어 비를 안주신 다면 그자를 벌해 주시고 우선 비부터 내려주시옵소서. 영명하신 천지신명님이시여.
이 불쌍한 중생들에게 영험을 베푸시어 이 땅에 비를 뿌려 주시옵소서.
백배 천배 만배의 절을 올리며 간절히 빌고 또 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