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한 헛소리를 해서 꾸중만 들었다.
"할아버님! 지가 잘 못 했구먼유"
"잘 못을 알았으면 됐다 어서 밀 서리나 먹거라"
손자를 대하듯 점잖게 말씀을 하시고는 밀 서리가 맛이 있다는 듯 치아도 변변치 않은데도 맛있게 밀서리를 잡수신다.
헌데 부모님과 선생님 이름까지 묻는 것이 혹시 밀 밭 주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할아버님은 어디 사세요?"
입이 미여 터져라 밀을 씹으시다 말고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우리집 말이냐?"
힘들여 입 속에 밀을 삼키시고는
"집은 알아서 뭐 하게?"
"어디서 뵌 듯한 어른이시라서....!!!"
말끝을 흐리면서 할아버지를 흘긋 보니 시내로 들어서는 첫집 할아버지와 많이 닮아 보인다.
"우리 집은 저 윗마을 첫 집이란다"
"네! 윗마을 첫 집에 사신다구요....???"
어쩐지 많이 뵌 듯 해 보이더라니... 그렇다면 밀 밭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잠시 냉기가 흐른다. 잠깐이지만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 밭이 할아버지 네 밀밭인가요?"
"그래 내가 밀 밭 주인이다 왜 놀랐느냐?"
밀서리 하는 놈을 붙잡으러 오신 줄도 모르고 밀서리를 드시라고 권하기까지 했으니 용코로 걸린 것이다.
걸음아 나 살리라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도 싶지만 아버지와 담임선생님 이름까지 이실직고를 했으니 도망을 쳐 봤자 독안에 든 쥐다.
잠시 말씀이 없으시던 할아버지는 밀밭을 휘둘러보시면서
"저기 밀 이삭도 없이 빈 짚만 삐죽이 서 있는 것은 그동안 너희들이 밀서리를 해 먹은 것이렸다?"
확인을 하듯 묻는다. 이를 말인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얼른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는 모가지를 조아리며 잘못 했다고 빌자.
"내일 아침에 부모님 모시고 오너라.... 알겠느냐?"
그 한마디를 남기신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가신다.
눈앞이 캄캄하다. 밭주인도 몰라보고 밀서를 같이 먹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할아버지 말씀대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가는 다리몽댕이 하나는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한다.
밀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렇게나 맛이 있던 밀 서리가 꼬라지도 보기가 싫다.
어쩌자고 부모님과 선생님 존함까지 말씀을 드렸단 말인가? 후회 막급한 생각이 들지만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내가 바보천치지 어쩌자고 묻는 대로 대답을 했단 말인가? 홧김에 서방질 한다고 화들짝 일어나서 밀 서리를 냅다 걷어차니 뿌옇게 잿티가 날리면서 익은 밀이 길바닦에 흉물스럽게 흩어진다.
이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기름 짜듯 머리를 짜 보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야! 밀 서리해 놨냐!"
때 마침 수업을 마친 형들이 배가 고픈지 책가방을 옆에 끼고는 마라톤 선수처럼 뛰어 내려오면서 버럭 고함을 지른다.
겁도 없이 남의 밀을 함부로 서리 해 먹다가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숨을 헐떡 거리며 뛰어 온 형들이 흩어진 밀 이삯과 똥 먹은 개상을 하고 있는 나를 쳐다보더니 눈을 휘둥그래 뜨고는
"야! 니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냐?" "오다가 혹시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 한 분 못 보셨어요?" "봤지...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왜?"
형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맛나게 밀서리를 먹던 형들은 눈이 화등잔처럼 커지면서
집 옆에 사는 형이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걱정이 된다는듯 씨부렁 거리자
"내 언젠가는 이런 일 당할 줄 알았다 내가 밀밭 주인이라도 가만히 안 있겠다. 그러길래 내가 뭐랬냐 한 집 밀만 뽑아다가 서리하면 큰 일 난다고 했냐? 안 했냐? 결국 내 말을 귓등으로 듣더니 꼴 좋다"
"야! 너 지금 불난 집에 기름 붓냐?" "기름 붓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한집 밀만 서리하지 말자는 얘기다" "기왕지사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냐...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학교에 찾아가지를 않고 아버지만 모시고 오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니냐?"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나를 위로를 해 주기는커녕 입방아만 찧으면서 부지런히 밀을 비벼서
맛있다는 듯 허겁지겁 먹어 대는 형들이 미워진다.
생각 같아서는 한발씩 걷어차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꼬라지도 보기 싫은 밀서리를 보지 않으려고 돌아 앉아 있으려니 "야! 그만한 일을 가지고 뭘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고 있냐? 내일부터는 이 길로 안다니면 되지"
부모님과 담임선생님 이름까지 알려줬는데 다른 길로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형들은 나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밀서리 먹는데 만 정신이 팔려 있다.
"형! 그게 아니란 말이야" "그게 아니라니? 또 뭔 소리냐?" "부모님 이름과 담임선생님 이름까지 말 했단 말이여" "뭐가 어쩌구 어째! 야이 바보 같은 놈아!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할아버지가 주인인지 몰랐단 말이에요" "그래 뭐라고 그러시더냐?" "내일 아침에 아버지 모시고 오래요" "그 할아버지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소문났는데 걸렸으니 아마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안 넘어가면? 자기도 같이 먹었다면서 별 일이야 있겠냐?"
만약 아버지가 아시는 날에는 다리몽댕이 하나는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한다.
"야! 너무 걱정하지 말어라 너희 아버지께서 잘 처리하실 것이다" "형이 우리 아버지를 잘 몰라서 그래요 나쁜짓 하면 경을 칠 줄 알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귀여워한다고 별일이야 있겠냐?" "야! 걱정 할 것 없다 말 못하는 부처님도 빌면 된다는데 아버지가 어딜 가셨다고 거짓 말 하고 잘못 했으니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면 용서해 주실 것이다"
비는 일이야 얼마든지 빌 수가 있지만 아버지께 꾸중을 들을 일이 걱정 된다.
똥 먹은 개 상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반색을 하시면서
"너 이리 좀 들어오너라" 아버지를 따라서 안방으로 들어 갔다.
혹시나 오늘 일을 벌써 아시고 부르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