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고 나니 대동강 얼음이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저 만치서 득달(得達) 같이 달려 온다.
옛부터 우수가 지난지 5일이면 수달(水獺)이 물고기를 잡아서 늘어 놓고 그 다음 5일은 기러기가 북녘으로 날아가고 마지막 5일은 초목(草木)에 새순이 돋는다고 한다.
계절은 정녕코 봄이로구나 !
봄 볕에 이끌려서 봄을 느껴 보려고 오랫만에 들녘으로 봄나들이를 나섰다.
지난 겨울 모진 설한풍(雪寒風)에 죽운듯 미동(微動)도 하질 않고 널 부러져 있던 들녘에도 따스한 봄볕이 살포시 내려 앉아 섬섬옥수(纖纖玉手) 같은 햇님의 고운 손으로 어루만지자 들녘은 부활(復活) 하듯 부스스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
기지개 켜는 소리에 잠이 깨인 시냇물도 한 동안 잊고지낸 친구들의 소식이 그리운지 졸졸졸 노래 하듯 흥얼거리면서 지난 가을 헤어진 친구들을 찾아 나서고 "비비비 종종! 비비비 종종!" 종다리도 봄이 왔다고 에메랄드 빛 봄하늘 속으로 나래짓이 바쁘다.  
만물(萬物)이 소생(蘇生)하는 약동(躍動)하는 봄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코 끝을 스치는 바람 속에는 향긋한 봄 내음이 물씬 묻어나고 아지랑이는 아롱아롱 봄길따라 남녁의 봄 소식을 한 아름 안고 살랑거리며 온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더 먹는다고 들녘에는 부지런한 늙은 농부가 트랙터를 몰고 나와 사래 긴 밭을 가는데 마치 스컹크가 매연을 뿜어대듯 검은 연기를 봄바람에 날리며 부지런을 떠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치 한 쌍이 주인 따라가는 강아지처럼 농부 꽁무니에 따라 붙어 동면(冬眠)에서 막 잠이 깨어난 굼뱅이와 지렁이로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고 꽁지 깃털을 깝족거리면서 만찬을 즐기고 있다.
내 어린시절에는 소로 밭을 갈았는데 지금은 눈을 ?고 찾아봐도 소는 보이지를 않으니 세월이 변해도 상전벽해(桑田碧海) 만큼이나 변했다.
저렇게 사래가 긴 밭은 소로 갈면 해동갑 해야 하거늘 트렉터로 가니 아침 해장거리 밖에는 안 될 것만 같다.
밭두둑에 장승처럼 뻐질러서서 밭 가는 농부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농부가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잠시 쉬려는지 트렉터를 멈추고 터덜터덜 내게로 다가 오는데 얼핏보니 환갑은 지난듯 연배(年輩)쯤으로 보인다.
" 노인장(老人丈)께서 밭 가시느라고 고생이 많습니다 "
" 별로 힘은 들지 않는데 기름값이 비싸서 이제는 농사도 못 짓겟습니다 "
한탄하듯 읊조리는 목소리에는 기름값 걱정이 물씬 묻어 나는걸 보니 하늘 높은줄 모르고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는 기름값이 농부의 허리를 휘게 하는 모양이다.
사계절이 뚜렸한 살기 좋은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지만 기름 한방울 나질 않으니 농부의 탄식(歎息)이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 또한 지난 겨울 난방비로 열가마니도 넘는 쌀값을 지불했으니 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우리강산에도 샘 솟듯 기름이 펑펑 솟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일순(一瞬) 든다.
농부가 밭두둑에 털푸덕 엉덩이를 내려 놓고는 주저물러 앉더니 가자미 눈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며" 땅 보러 오셨오? "농부의 눈에는 내가 복덕방 늙은이로 보였는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해 댄다. 
"웬걸요! 봄볕이 하도 좋아서 봄나들이 나왔습니다 "
" 팔자가 좋으신 양반이구먼 "
남의 속도 모르고 부아질 하듯 염장을 지른다.
" 노인장은 사는게 재미 있으시오? "
" 재미요? 무슨 얼어죽을 놈에 재미 그저 죽지못해 산다오 "노인장은 갈퀴 같은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고니 깊게 한 모금 빨아드렸다가 한 숨과 함께 토해 낸다.
"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세요? "
말 없이 줄담배를 피우던 노인장은 또 다시 땅이 꺼져라 한 숨을 토해내더니 경칩(驚蟄)에 입 떨어진 개구리처럼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 세상이 말세(末世)라더니 요즘 젊은 것들 하는 꼬라지를 보면 살 맛이 안난다오 "  가정에 뭔가 말 못할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 뭔가 고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속이라도 시원하게 말씀해 보시지요 "
" 가정사 이야기 해봤자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니요 "
"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처럼 속이라도 시원하게 말씀해 보세요. 그렇게 혼자서 가슴 앓이 하시면 병 생깁니다 "
노인장은 담배를 다시 피워 물고는 잠시 깊은 상념(想念)에 잠겨 있더니 드디어 답답한 가슴을 열 듯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노인장은 딸 셋에 아들을 하나 뒀는데 딸들은 모두 출가를 시키고 아들은 소를 백여마리나 키우며 시골에서 부잣집 소리를 들으며 사는 독농가(篤農家)였다고 한다.
옛날 같으면야 부잣집이라면 서로 딸을 시집보내겠다고 난리 부르스를 췄겠지만 요즘은 시골 부자는 일부자라고 요즘 처녀들은 시골로 시집 가기를 꺼리는지라 시골에는 혼기가 꽉 찾는데도 장가를 못 간 노송각이 한 둘이 아니다.
노인장의 아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버지를 도와서 소를 키우고 있었으니 장가도 못 가고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자 노인장은 아들을 혼인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결국에는 아들 장가를 보내기위해서 소를 몽땅 팔아 서울에다 조그만 구멍가계를 차려줬다는 것이다.
장사를 시작한지 일년만에 아들은 학교 선생님과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선생님을 며느리로 얻은 노인장은 세상을 다 얻은듯 기뻐서 마을에서 크게 잔치도 벌리고 며느리를 세상에 둘도 없다고 신주단지 모시듯 극진하게 떠 받들었다는 것이다. 시집 온 며느리는 처음에는 시부모님을 극진히 공경을 하고 결혼한지 일년만에 아들 딸 쌍둥이를 낳았단다.
시부모는 며느리가 신통방통(神通芳通) 해서 시어머니는 유모(乳母)처럼 아이를 키워주며 식모처럼 집안 살림도 도 맡아 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살던 아들은 장사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랬는지 삼년만에 소 백 마리를 몽땅 털어 먹고는 알거지가 돼자 노인장은 또 다시 땅마져 팔아서 장사를 할 수 있게끔 해줬다는 것이다.
손주들이 커서 유아원에 다니게 돼자 그렇게나 얌전하던 며느리가 갑자기 악부(惡婦)로 돌변해서 무식한 시어머니가 애들 교육을 다 망친다면서 시어머니를 쫓아냈다는 것이다.핏덩이 쌍둥이를 키워 줬을뿐만 아니라 식모처럼 살림까지 해줬고 소와 땅까지 팔아서 먹고 살게 해줬는데 시부모의 은공을 알기는 커녕 시어머니가 무식해서 애들 교육을 망친다니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 아닌가?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듯 큰 사단(事端)이 난 것이다.
노인장은 믿었던 며느리가 하루 아침에 악부(惡婦)로 돌변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곧장 며느리를 찾아갔더니 시아버지 역시 머슴취급을하면서 문전박대(門前薄)를 하더라는 것이다.
노인장은 너무나도 분하고 원통해서 식음(食飮)을 전폐하고 세상을 버릴까도 생각을 했지만 생 목숨 끊지를 못하고 죽지 못해서 살아 간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끝낸 노인장의 눈에는 눈물을 글썽 거린다.
얼마나 원통하고 분했으면 저렇게 눈물까지 흘리시겠는가?
부모님을 학대를 하다니 그 들은 부모님 아니면 어디서 이 세상에 태어낳단 말인가?
그 들은 정녕 하늘이 무섭지도 않단 말인가?
세상에 어떻게 인간에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긴 요즘은 부모를 때려 죽이는 금수(禽獸)만도 못한 인간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가슴에서 울화통이 치밀면서 가슴이 아파 온다.
" 교육청에 탄원서(歎願書)라도 내 보시지 그러셨어요?
" 그 것들 하는 꼬라지를 보면 백번 그러고도 싶지만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문의 대를 잇게 해준 며느리인데 내가 참고 말아야지요 "
노인장의 말씀을 듣고나니 부모의 마음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도 깊다는 말이 결코 헛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며느리는 부모님의 이러한 마음을 알기나 하는가?
부모님이 무식하다고 쫓아 낸 며느리가 자식들에게는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라고 말하겠지.
"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어린아이라고 모를 줄 알지만 그 들도 본대로 행할 것이다.
하긴 부모를 학대하는 집이 어디 한 두 집인가?
늙기도 서러운데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에게 문전박대까지 당하니 이놈의 세상이 말세는 말세인가보다.
세월이 흘러가면 아이들도 모두다 부모가 될텐데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왜 그 생각은 못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젊다고 영원히 젊을줄 아는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손주를 귀여워하면 할아버지 수염을 꺼든다고 자식들이 귀엽다고 오냐 오냐 하면서 키워놨더니 자기만 알고 부모님의 은공을 모르는 젊은이가 어디 한 둘이인가?
따지고 보면 우리가 젊은시절 가난 때문에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웠기에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대 물림하지 않으려고 밤을 낮 삼아 일하면서 한풀이하듯 원 없이 먹이고 입히고 대학까지 가르치면서 예절교육을 등한시 했더니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댓가가 고작 이런 것이란 말인가?
노인장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옛날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요즘은 비일비재 일어 난다.
무슨 약으로 이 병을 고친단 말인가?
오직 약은 예절 교육뿐이거늘 요즘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두둘겨 맞는다니 예절교육이 씨나 먹히겠는가.?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요즘은 금수만도 못하게 변해 간다.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젊음이기에 가 버린 젊음이 덧 없기만 하구나.
우수라고 공연히 봄나들이를 나왔다가 노인장의 말을 듣고나니 마음만 무거워 진다.
노인장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털어 놓고나니 조금은 속이 후련하다는듯 쓴 웃음을 짓고는 잘가라는듯 목례(目禮)를 하더니 트렉터에 올라 앉아 밭이 며느리인양 마구 갈아 엎기 시작을 하자먼 발치에서 밭갈기만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까치 한 쌍이 무슨 놈에 이야기가 그리도 기냐는듯 나를 책망하듯 노려보면서 어서 빨리 갈 길이나 가라고 "깍!깍!"거리면서 눈총을 준다.
노인장을 향해서 손을 흔들면서 돌아서는데 까치가 앓던 이가 빠진듯 기뻐하면서 "깍!깍!깍!" 해 맑게 울어 댄다.까치의 울음 소리에 봄날은 무르 익어만 가는구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