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명대 겸임교수 철학박사 송양호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우리 속담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란 말이 있다. 같은 조건이면 품질 좋고, 쓸모도 있는 것을 고른다는 말이다.
본디 다홍치마는 첫아이를 낳기 전의 새색시가 입는 옷이다. 다홍치마는 새색시의 예복이므로 여느 때도 입을 수 있고 예복으로 입을 수도 있다.
이왕에 살 바에는 이렇게 다목적이며 실용적인 것이 낫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옷을 고를 때 같은 값이면 기본적인 옷의 기능 외에도 색과 디자인이 좋다고 생각되는 옷을 고르며, 어느 경우에는 기능성 보다는 색과 디자인에 우선을 두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패션디자이너들은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풍광이 좋은 집터를 골라서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구조와 형태를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집과 어울리는 색을 고른다.
물론 집의 기능인 편리성과 내구성, 냉·난방은 우선 조건이 된다.
이러한 일련의 선택들은 집의 기능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염두에 두고 결정되는 의사결정과정이다.
문제는 기능성에 아름다움을 더하기위해서는 대부분 많은 비용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도 집을 아름답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같은 비용에 약간의 외부스타일만 바꾸어도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으며,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건물색을 칠하고 건물의 구조와 형태에 맞는 강조색을 주어 건축물의 미를 발현할 수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반드시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 속담처럼 같은 값에도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갖춘 건축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와 디자인심의

제천시에서는 아름다운 시를 만들기 위해서 공공건축물과 시설물을 설치하기 전에 디자인심의를 하고 있다.
디자인심의위원회는 일반시민과 미술·조형·조경·건축·디자인분야 전문가 및 대학교수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심의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시설물이 되도록 외부 디자인과 색채에 초점을 두고 진행된다.
디자인심의를 마치고 지어진 읍면지역의 마을회관이나 다목적회관은 예전의 틀에 찍어낸 것 같은 사각형 구조에 슬라브지붕, 시멘트벽돌이 아닌 주변경관에 맞추어진 다양하고 미려한 디자인과 색채를 갖추고 있다.
제천시 디자인심의가 이와 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은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사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사단법인 제천시 건축·문화·공간디자인시민위원회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처음에는 심의에 대한 반대의견도 많았다. 전문가인 건축사가 설계한 건축설계를 전문성이 없는 일반시민이 포함된 디자인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건축사들의 반발이 있었고, 건축물의 이용자인 주민들도 심의를 귀찮은 간섭으로 받아들여 심의위원회와 많은 갈등을 빚었다.
또한 시민위원 중 일부는 건축사들의 반발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은 설계는 할 수 없지만 전문가들이 설계한 건축물의 최종 소비자로서 느끼고, 보고, 평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인 유명패션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도 소비자들이 외면할 때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일반시민도 전문가가 전문성과 주관성으로 설계한 작품을 소비자로서 일반성과 객관성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단법인 제천시 건축·문화·공간디자인시민위원회는 제천시디자인위원회의 일반시민위원과 제천시민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유명한 공공디자인관련 교수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체계적인 공공디자인 전문가과정(12주씩) 2회와 색채 관련  교수와 전문가들을 초청, 색채교육(4주씩)을 4회 실시하였다.

심의과정 갈등 최소화 가능
 
전국 디자인학과 교수들을 초청 강연과 토론회를 수 십 회 개최, 제천시디자인심의위원들을 디자인에 대한 전문가 수준으로 올리는데 기여했다.
또한 실제 사용자인 주민들에게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돕는 것이라고 설득하여 갈등을 줄여가고 있다.
설계·제작하는 전문가와 직접 이용하는 주민 및 간접이용자인 일반시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공공건축물과 공용시설물 심의는 이해관계자들과 갈등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모두 하나의 지향점인 “아름다운 도시”를 목적의 중심에 둔다면 갈등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전문가과정을 강의한 교수들은 디자인 심의위원회가 있는 자치단체는 많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곳은 제천시가 유일할 것이며 일반시민의 참여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제천시디자인위원회가 발전하고 타 지역의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공공건축물과 공공시설물의 최종소비자인 제천시민의 공공디자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 참여, 공급자인 전문가(건축사·디자이너등)의 협조, 직접 이용자인 지역주민의 이해와 디자인심의위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건축사와 디자이너들은 어렵더라도 전문성을 발휘 직접 이용자인 지역주민과 일반시민의 요구를 적절히 반영해 설계·디자인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시민 디자인위원들은 전문가의 전문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고 심의대상물을 일반화·객관화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도록 노력한다면 제천시디자인위원회는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얻을 것이다.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금씩 양보하고 노력할 때 제천시는 천천히 아름다운 도시로 변할 것이다.

2011년 디자인 심의에서 원안가결하여 신축한 금성면 월림2리 다목적회관.주변환경과 조화되고 어울리도록 설계해 심의에서 원안 가결된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