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참 때 보자 그 때도 그런 소리 하는지........
막걸리도 못 마시고는 모판으로 들어서서 한 섬지기 모를 거의 다 쪄 갈 무렵 드디어 새참 밥함지가 떴다.
"새참 먹고 합시다." 새참 그릇이 궁금해서 버럭 고함을 지르자 "야! 온 새참이 어딜 가냐?  찌던 모나 마저 찌고 나와라 일 못하는 놈들이 먹는 것은 더 밝힌다니까 "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오라고 해도 남은 모는 마저 찌고 나갈 텐데 속보이는 소리를 해 댄다.
새참을 이고 온 창수어머니와 막걸리와 그릇을 이고 함께 오신 이웃 아주머니 두 분은 방천둑이 밥상 인양 국수상을 차려 놓는다. 새참이 차려진 방천둑으로 나가 보니 국수가 눈에 넣어도 차질 않을 만큼 담겨져 있다.
밥이 일을 한다고 하는데 해도 해도 너무 한다. 한 젓가락 긁어 넣으니 바닥을 드러낸다.
국물까지 몽땅 마셨어도 간에 기별조차 가질 않는다. 젓가락을 놓지 않고 들고 있어도 창수어머니는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국수가 많은 것 같아서 조금 남겼더니 마저 삶을 걸 그랬나?"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고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절약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절약도 절약 할 때 절약을 해야지 힘들게 두레모를 심는 일꾼들 배까지 골려가면서 절약을 한다는 것은
절약이 아니라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구차한 변명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창수어머니의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어서 먹은 국수마저 올라오려 한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하더니 그 버릇이 어디 갈까?
허기진 배를 막걸리로 겨우 달래고는 어른들 눈을 피해서 도둑 담배를 피우면서 집으로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성질이 가랑잎에 불같고 불의를 보고는 참지를 못하시는 "써대아저씨가" 나를 좀 보자고 하신다.
"어르신! 왜 그러시는데요?" "자네 귀 좀 잠깐만 빌리세"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귀까지 빌리자고 하신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써대아저씨 앞으로 귀를 돌려 대자 참으로 기상천외한 말씀을 하신다.
"내 말 잘 알아들었는가?"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는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창수어머니의 못된 버릇을 고치도록 한번 해 보자구"
창수어머니 오늘 개똥 한 번 걸러 봐라!
새참시간이 끝이 나고 드디어 모심기가 시작 됐다. 한다랭이가 한 섬지기인 바다 같은 넓은 논에 살랑살랑 초여름 바람이 불어오자 잔잔한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가뜩이나 일꾼이 적은데 욕심쟁이네 모심는 날이라서 그런지 날씨조차 해방을 놓는다.
한 섬지기 논을 반을 가르듯 장줄을 쳐 놓더니 상으로 막걸리 다섯 말을 걸 테니 젊은 사람들과 어른들이 모내기 시합을 해보라는 것이 어떻겠냐고 한다.
이 또한 일꾼을 적게 얻었으니 경쟁을 붙여서 모내기를 끝내려는 얄팍한 잔꾀가 숨어 있는 것이다.
농사일도 선의의 경쟁은 일에 능률을 올릴 뿐만 아니라 재미까지 더 해 힘든 줄을 잊고 즐겁게 일을 할 수가 있지만 창수네 처럼 일 욕심을 내면 오히려 역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는 사실을 창수네 부자는 모르는 모양이다.
드디어 못 줄이 띄워지고 모내기가 시작 됐다.
작년에도 막걸리를 걸어서 일꾼들이 멋도 모르고 죽자 사자 모를 심었지만 올해는 다들 시큰둥한 표정으로 무릎에 팔꿈치를 받치고는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종지모를 심는다.
"야! 막걸리 먹으려면 부지런이들 심어라"
창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젊은 일꾼들은 뉘 집 개가 짓느냐는 듯 들은 척도 않고는 "야! 배가 고파서 모도 못 심겠다.  점심이나 빨리 해 와라"
"솥을 굴뚝에다 걸었나? 아니면 밥하다가 솥이 빠졌나 얼른 집에 가봐라"
새참이 적었다고 어른들도 한 마디씩 거들자 창수네 부자는 입을 댓 발은 빼물고는 어찌할 줄을 몰라 마을만 자꾸 쳐다본다.
다섯 마지기는 심었을 때쯤 점심 밥 함지가 들녘으로 나서는데 우리 밥함지는 꼬락서니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밥솥이 빠진 모양이다 얼른 진흙이나 파가지고 가보게" "새참도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주더니 점심은 아예 굶길 참인가?
왜 여직 밥이 안 오지?" "시장이 반찬이라고 반찬을 아끼려고 일부러 늦나보지 뭐"
젖 달라고 보체는 아이처럼 일꾼들이 배가 고프다고 밥 타령만 하자 "창수야! 점심이 왜 이리 늦는지 얼른 가 보거라 "
일꾼들 성화에 못 이겨 창수아버지께서 집에 가보라고 이르자 팽그래미 달아나듯 창수가 집으로 뛰어 간다.
때는 이 때다 싶어서 써대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사발통문 돌리듯 전하자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재미가 있겠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입맛을 다신다.
드디어 집으로 간 창수가 점심을 짊어지고는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창수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 두 분이 그릇과 술동이를 이고는 뒤따라오신다.
"자!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 먹고 합시다." 써대아저씨가 제일 먼저 논을 나서시면서 싸인을 보내듯 눈짓을 하고는 손을 씻는다며 개울로 나서자 어른들도 이야기를 들은 듯 한분 두 분  써대아저씨를 따라서 개울로 가신다.
나는 알았다고 말없이 고개만 끄떡였다.
드디어 방천둑 밥상에 점심밥이 차려 졌다.
구수한 밥 냄새가 식욕을 자극 한다. 얼른 밥 함지를 열어 보니 일꾼은 스무 명 인데 열 명이 먹어도 양이 차질 않을 만큼 새참 국수처럼 밥을 해 왔다.
밥상을 차려 놓으신 창수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미나리를 뜯으시려는지 미나리꽝으로 가신다. "자! 밥 먹자" 친구들이 밥함지를 에워싸고는 퍼질러 앉자 창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야! 어른들도 안 오셨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너희들이 먼저 먹으면 어떻게 하냐?"
"어른들만 일꾼이고 우리는 일꾼이 아니냐?" 밥함지에다 반찬을 몽땅 쏟아 붓고는 썩썩 비벼서 어른들이 오시기도 전에 밥알 한 알 남기지 않고 몽땅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을 본 창수는 어의가 없다는 듯 한달음에 미나리꽝으로 달려간다.
소식을 전해들은 창수어머니는 눈을 화등잔처럼 치켜뜨고는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밥알 한 알 붙어 있지 않은 깨끗하게 비어 있는 밥함지를 보고는 아연 실색을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