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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아, 무슨 말이야. 넌 일어날 수 있어. 그런 말 하지 마.” 금봉이 큰 고모가 간신히 말을 이어가는 금봉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 고모, 이모, 갑돌아......”
“그래, 애비 여기 있다.” 금봉이 무슨 유언이라도 남길 것 같아 금봉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척들은 금봉에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친척들은 숨소리를 죽이며 금봉이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금봉이를 내려다보았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눈물만 흘리며 누워있는 금봉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제가, 제가 죽으면 이등령 꼭대기에 묻어주세요. 꼭 거기에 묻어주셔야해요.” 금봉이는 간신히 말을 하고 두세 번 숨을 몰아쉬었다.
“그, 금봉아, 어흐흐흐흐흐흐......” 금봉이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통곡 하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쁘고 귀여운 딸이었다.
“아-버-지, 이거, 이 편지 박달님께 꼬옥 -” 금봉이 크게 한번 숨을 몰아쉬더니 박달도령이 헤어질 때 건네준 옷고름과 편지를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지며 숨이 멎었다. 금봉이 아버지가 금봉이 맥박을 집어보았다. 가늘게 뛰던 맥박이 서서히 멈추면서 금봉이는 굳어갔다.
“얘, 아가, 금봉아, 정신 차려. 얘, 금봉아, 금봉아......”
“금봉아......”
“금봉아……." 금봉이는 박달에게 쓴 편지를 아버지에게 건넨 뒤에 뱃속에 아기와 함께 눈을 감고 말았다. 초승달과 개밥바라기가 서천에 나란히 떠 있는 초저녁에 금봉이는 한(限)을 품고 이승을 떠났다.
“아이고, 아이고 -, 금봉아, 아흐흐흐흐......”
“금봉아-.”
“아이고 금봉아, 원통해서 이일을 어쩔거나. 아이고-.”
“금봉아-.” 갑자기 금봉이 숨을 거두자 금봉이 어머니는 그만 실신하였고 금봉이 아버지는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안 돼. 금봉아 안 돼. 나를 두고 어디를 가는 거니. 안 돼. 금봉아 -. 아흐흐흐흐흐흐......, 안 돼 금봉아, 안 돼. 돌아와. 이대로 가면 안 돼. 난, 난 너를 안 보냈어. 어흐흐흐흐흐흐흐......” 아침부터 금봉이네 집 마당에 서서 금봉이의 상태에 촉각 곤두세우고 있던 갑돌이 금봉이 방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금봉이의 식어가는 손을 잡고 대성통곡하였다. 갑돌이 땅이 꺼지도록 통곡하자 금봉이네 집에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도 가슴이 뭉클하고 콧날이 찡해서 훌쩍거렸다.
“금봉아-, 이렇게 허무하게 가면 어떻게 하니. 난, 난 어떻게 하라고. 어서 일어나. 금봉아, 어서 일어나서 저 이등령으로 진달래꽃을 따러가고 칡도 캐러가야 하잖니. 어서 일어나봐. 어서. 아흐흐흐흐흐흐흐......” 금봉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친인척들 보다 갑돌이 서럽게 울자 그만 울음을 참고 있던 사람들까지 눈물을 찔끔거렸다. 금방 벌말은 조용한 슬픔에 휩싸이면서 마을 사람들이 금봉이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금봉이가 저렇게 허망하게 갔으니 갑돌이가 충격을 받았을 텐데. 저 일을 어쩌나? 금봉이가 다른 씨앗을 품고 있어도 갑돌이 금봉이를 탓하지 않고 더욱 애틋하게 생각했다는데. 저러다 갑돌이도 잘못 되는 거 아녀?”
“거참, 미꾸라지 한 마리가 몰래 기어들어와 온 동네를 슬픔에 잠기게 하였어. 그러게 타지 사람을 함부로 재우는 게 아니었어. 앞으로는 또 저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절대로 낯선 과객을 집안에 들여 재우지 말아야 해.”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잃은 금봉이 아버지가 안 되었네 그려. 좋은 사윗감을 고르려고 무진 애를 썼건만......” 동네 어른들은 마당에 모여 불을 피워놓고 금봉이의 죽음을 두고 침통한 심정으로 애도하였다. 벌말은 침통한 분위기에 서서히 어둠에 묻혀갔다. 삼월 중순 시랑산 이등령에 막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 날이었다. 동네 원로들은 아기를 밴 처녀가 한을 품고 죽었으니 흉사라고 하면서 서둘러 장례준비를 하라고 젊은 사람들에게 주문하였다.
"어허. 세상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구먼 그래.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이를 밴 채 죽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쨌거나 참으로 금봉이가 안됐으이. 얼마나 낭군이 보고 싶었으면 상사병에 걸려죽는단 말인가? 참으로 딱하게 되었어. 혼자도 아니고 뱃속에 아이까지. 쯧쯧쯧……." 동네 어른들은 금봉이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금봉이네 집 앞 마당에 모여 삼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로 이런 흉사는 처음이야. 성황신께 우리가 뭘 잘못한 거 같으이. 내일 이라도 이장님을 비롯해 동네 원로들께서 제사를 지내야 해. 성황신께서 노하신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재앙을 줄 리가 있어?“ 동네 어른들은 제 각기 한마디 씩 하면서 젊은 처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보통 삼일장으로 장례를 치르지만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임신한 채 한을 품고 죽었으므로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루라도 빨리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난리들이었다. 잘못하면 처녀의 원귀(寃鬼)가 동네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해코지를 할 수 있다며 걱정하는 눈치들이었다. 특히 평소에 금봉이를 험담해 온 사람들은 금봉이 원귀가 자신에게 달라붙으면 어쩌나하며 문 밖 출입을 금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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