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참봉네 셋째딸 영숙이년 골탕을 먹어야 하는데...

단오는 설,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이다.
그러나 요즘 시골에는 노인들만 살고 계시고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멎은지 이미 오래 됐으니 요즘 젊은이들은 단오절이 뭘 하는 날인지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관심조차도 없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단오절은 아주 큰 명절이었다.
단오절이 돌아오면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감고 낮에는 물찬 제비처럼 창공을 가르며 그네를 뛰고 오후에는 떡취로 취떡을 만들어 다정한 이웃과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고 남자들은 새벽에 들로 나가 익모초나 약쑥을 베어다 엮어 시렁에 걸어놓고는 낮에는 천렵을 한다고 족대질로 물고기 잡아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어죽을 끓여먹고는 힘자랑 한다고 모래바닥에서 씨름도 하면서 하루를 즐겼다.
단오 하면 지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을 처녀들이 모두 모여 그네 타는 모습이다.
갑사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처녀들이 그네에 올라 물찬 제비처럼 창공을 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 중 우리 마을에서 그네를 가장 높이 오르는 처녀는 최참봉네 셋째딸 영숙이었다. 갑사 치마저고리에 갑사댕기를 물린 영숙이가 창공을 가르며 그네를 타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그네를 타는 듯 마을 총각들이 모두 다 넋을 놓고 바라 봤는데...
영숙이는 얼굴도 예쁘지만 더군다나 선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라 그런지 마을 총각들이 모두 군침을 흘렸지만 영숙이는 예쁜 얼굴값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아니면 부잣집 셋째 딸이라고 그러는 것인지 쥐꼬리만 한 농토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아가는 우리만 만나면 마치 우리들을 저희 집 머슴인양 대하며 잘난 체 꼴값을 떠는 꼴이란 눈이 시어서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저 육실 할 년!
언젠가는 꼭 한번 골탕을 먹이자고 친구들과 벼르고 있었건만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아 차일피일 기회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단오를 하루 앞둔 날 상길이가 찾아와서는 “영숙이년 골탕 먹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골탕을 먹일 건데?” “너는 몰라도 된다” “야! 어떻게 골탕을 먹일 것인지 나도 좀 알자.” “너는 몰라도 되니 그저 궂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오살할 놈! 도대체 무슨 생각이 떠올랐기에 입을 쳐 닫고는 몇 번을 물어봐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하질 않는다.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하고는 가장 친한 친구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을 해 주지 않는 것을 보면 나를 친한 친구인척 대하면서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배신감이 든다.
“야 이 썩을 놈아! 니가 내 친구 맞냐?”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니가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 “내가 뭘 어쨌다고 심통을 부리고 난리냐?” “그런 소리 하려거든 가라! 니 꼬라지도 보기 싫으니” “가지 말래도 갈테니 걱정마라”
상길이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실그적 돌아서더니 삐친 듯 삐적거리며 간다. 상길이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친구를 한 사람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입맛이 소태를 씹은 듯 하다.
조금만 참을 걸... 후회 막급한 생각이 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눈길을 거두어 들이려는데 삐적거리고 가던 상길이가 방향을 돌려 다시 온다.
“야 이 육실할 놈아! 갈려고 마음먹었으면 가지 왜 다시 오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 “너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안하는데 나는 대답할 것 같으냐?” “오늘 밤 그네줄 들이는데 꼭 와라” “니 꼴 보기 싫어 안 갈란다.” “사내 자식이 계집애 처럼 삐치기는.” “올해부터 형들이 우리보고 그네줄을 들이라고 하더라” “그게 정말이냐?” “정말인지 아닌지는 직접 와서 확인해 봐라.”
상길이는 끝내 영숙이를 골탕먹일 방법을 말하지 않고 가버린다.
“올해는 우리가 그네줄을 들인다?”
해마다 단오 전날 밤이면 마을 형들이 그네를 맨다고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로 모두 모여 횃불을 밝혀놓고는 짚으로 그네줄을 엮어 단오날 그네를 뛸 수 있도록 매어 놨는데 올해는 우리한테 그네를 매어 놓으라고 하는 것은 그네 줄을 매기가 귀찮아 형들이 우리에게 그 일을 떠 넘긴 것 같지만 늘 우리들은 어린아이 취급을 허던 형들이 올해부터는 우리를 청년으로 인정한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저녁이 늦어 개 머루먹듯 먹고는 느티나무로 달려가보니 친구들은 한사람도 빠진 사람없이 모두 모여 대낮처럼 횃불을 밝혀놓고는 그네줄을 엮고있는데 서까래 세 개를 묶어 세워놓은 앞쪽에는 칠복이, 창수, 상길이 셋이서 짚을 비비꼬아 "영치기 영차!" 장단을 맞춰가며 길게 꼰 줄을 서로 주고 받으며 그네줄을 열심히 엮는데 얼마나 잘 엮는지 구경하느 친구들조차 흥이나서 어깨를 들썩거리는데 서까래 넘어서 그네줄을 잡고 있는 범수는 키는 커서 멀대같은데 갈비씨라 그런지 그네줄에 딸려가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모습은 물가에 세워놓은 어린아이처럼 안쓰러워 보인다.
얼른 범수옆으로 다가가 그네줄을 함께 당기니 범수란 놈 그제서야 살겠다는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해낸다.
5월 초순이라 초승달은 서산에 실그적 걸려있고 앞논에서는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이중창을 부르듯 논을 뒤엎고 앞산에서는 소쩍새가 님을 찾는지 밤이깊어가는데도 "소쩍 소쩍!" 애달피 울어대고 나방들은 실연을 당했는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횃불속으로 날아든다.
처음에는 손발이 맞지를 앉아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듯 그네줄이 울퉁불퉁하더니 몇발 그네줄을 엮고나더니 금새 기술이 늘었는지 튼튼하고 미끈한 그네줄이 가래떡이 빠져나오듯 술술 잘도 빠져나온다.
그네줄을 거의 다 엮어갈 무렵 형들이 막걸리가 가득 담기니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는 수고를 한다며 격려차 우리를 찾아왔다.
말이 격려지 실은 그네즐을 검사하러 온 것이다.
형님들은 눈에 불을 켜고는 꼼꼼하게 그네줄을 만져도 보고 당겨도 보더니 매끈하면서도 튼튼하게 잘엮었다면서 듣기 민망할 정도로 칭찬을 늘어놓고는 막걸리를 한사다발씩 따라주고는 돌아가면서 "앞으로는 마을에 초상이 나도 상여줄은 자네들이 책임을 지게."
그네줄을 멋지게 엮는 덕에 일거리만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