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제천내토중학교장

이 성  범

올해도 변함없이 564돌의 한글날을 맞게 되었다. 우리 국민이면 모두 인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글은 우리겨레의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과학적인 글자로 인정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한글은 자랑스런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이요, 우리 자긍심의 발로의 산물이다. 이러한 우리말도 급속한 정보화시대를 맞아 곤욕(?)을 치루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빠른 시대에 적응하다보니 말 또한 간결하고 빠르게 되어 한마디의 단어조차 거추장스러운 지 더 짧게 줄여 말하기가 예사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기에 하루가 다르게 준말들이 쌓이고 있다. 그래서 인지 요즘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이름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내딛지 않는 모양이다. 빠르고 간결한 것에 익숙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느림과 삶의 긴 호흡에 대한 애착이 일고 있다. 그런가하면 다양한 다국어의 범람속에서도 우리말의 정서를 살리고자하는 노력들이 없지 않다.

예를 들면 감자탕과 손두부촌/강에 비친달/ 기분좋은 날/뜰앞의 잣나무/글향기/아낌없이 주는 나라/들숨 날숨/새빛 누리회/샘이 깊은 물/아름다운 사람들 과 같은 가게 이름이나 단체 이름들이 눈길을 끌어 행인들의 가던 발걸음을 마냥 멈추게 한다.

물론 이외에도 우리의 심미안을 밝게 해주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이 있다. 어쩌면 이들은 뭔가 우리의 생각을 머물게 하는 이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짧은 이름은 말하기 간편하고 기억하기 쉽다. 그러나 간결한 이름에 드러나는 말맛은 단조롭다. 그런데 비해서 요즘에는 이러한 간결체 이름의 단조로움을 넘어선 긴 이름들이 늘고 있다. 그것도 우리말을 살려 지은 이름들 말이다. 이처럼 긴 이름은 여러 말로 이루어진다. 여러 말로 이루어진 만큼 그 말맛의 여운도 더하다.

한 낱말의 직관성을 넘어서 한 자락의 생각을 심어 주는 효과가 있다. 언젠가 서점에서 우리상품 이름 목록집을 넘겨 본 적이 있다. 100만도 넘는 것으로 기억된다. 관련기관에서는 이미 데이터베이스화 한 것으로 안다.

무릇 말도 거두고 가꾸어야 살아남는다. 거두는 이도 없고 가꾸는 이도 없으면 말 또한 시들고 말라 죽는다.
그렇다. 오늘날 거리에 나붙은 영문자나 외국어 간판과 상표이름, 거침없이 밀려드는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에 섞어 쓰거나 다듬어지지 않은 채 쓰이는 용어, 청소년들 사이에 은밀히 주고 받는 은어, 속어, 컴퓨터에서 쓰는 통신언어, 알게 모르게 잘못 쓰이고 있는 우리말 등 무분별한 말글생활이 우리말과 글을 심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이러한 말글 생활이 지속된다면 우리문화와 얼을 대변하는 우리말글이 어떤 모습으로 변절되어 갈지 염려스럽다. 물론 기우이겠지만 말이다.

다시한번 564돌의 한글날을 맞아 생각해 본다.우리의 고귀한 얼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의 확산을 위해 보다 폭넓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문제는 시대에 흐름에 맞추어 다국어를 익혀 국력을 신장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것을 받아들이는 밝은 지혜가 더욱 필요한때가 아닌가 .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요, 책임이다. 이것이 작은 나라사랑이 아니리요. 늘 이맘때가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