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 타관객지에서 살아가자니 고생인들 말해서 무엇하리.

길상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도 많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해안가를 달리던 택시가 방향을 바꿔 시내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이내 고층빌딩 앞에 멈춰서더니 나를 돌아보며 "손님! 저 건물안에 예식장이 이씁니다."

"기사님! 고맙습니다."

택시비를 내고 차에서 내렸다, 친절한 기사님을 만나 고생을 하지 않고 예식장 앞까지 왔다.

위황찬란하게 꾸며진 예식장 안으로 들어서니 촌놈이라 그런지 눈이 화등찬처럼 커지면서 내 모습이 초라한 듯 보여 나도 모르게 모가지가 자라처럼 자꾸만 움츠러 드는 느낌이 든다.

예식장 안은 만원버스처럼 하객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예식시간은 벌써 지났건만 어디를 봐도 깅길상이라고 써붙인 이름 석자가 눈에 띄질 않는다.

내가 혹시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가 싶어 청첩장을 다시 봐도 찾아오긴 제대로 찾아왔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청첩장을 다시 보니 청첩장에 쓰여있는 길상이부인 이름만이 코 앞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그렇다면 혹시 길상이가 죽기라도 했단 말인가?

입에 침이 마르고 속이 탄다.

하객을 붙잡고 물어보니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길상이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갑작스레 길상이릐 부음소식을 들으니 하늘이 무너지느 듯 덜컥 가습이 무너져내린다.

자식의 혼사를 열흘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가다니..........복도 참으로 지지이도 없는 친구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눈물을 훔치고 식장 안으로 들어서니 깅ㄹ상이 자리는 덩그러니 비어있고 부인만 앉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고있다.

꿈에 그리던 친구를 만나려고 불원천리 달려왔건만 열흘 전에 가다니.........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맥이 풀려 밖으로 나와 앉아있노라니 식이 끝이 났는지 하객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오고 조금뒤 기념사진 활영을 마친 양가 친척들이 숙연한 표정으로 걸어 나온다.

길상이도 어려서는 사내다웠는데 부인도 참해 보인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길상이부인 앞으로 다가가자 누구냐는 듯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건너다 본다.

"따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중하게 인사를하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처음 뵙는 분이라 누구신지요?"

부인은 인사를 받으면서도 나를 처음 본지라 혹시 잘못 찾아온 하객인가 싶은지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말을 하는 것보다 청첩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애 청첩장을 건내자 청첩장받아든 부인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나를 바라보더니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소리죽여 흐느껴 운다.

잠시 소리죽여 울던 부인이 겨우 울음을 씹어 삼키고는 “먼 길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하더니 그렇잖아도 꼭 한번 찾아뵙고는 고인의 마지막 유언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잘 오셨다며 급한 일만 처리하고는 곧 돌아올테니 사무실에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종종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이가 없다.

사십년이 훌쩍 넘은 옛 친구 자녀 결혼식에 왔다가 친구 유언을 듣게 되다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멀리 내다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길상이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데 길상이 부인이 급한 일을 마쳤는지 허둥지둥 집으로 가자며 예식장을 나선다.

길상이네 집은 예식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중턱 양지바른 언덕에 종달새 둥지처럼 아담하게 지은 연립주택이다.
방으로 들어서니 벽에 걸려있는 액자 속에는 나처럼 백발이 성성한 중늙은이가 엷은 웃음을 머금고는 나를 반겨 맞이한다.

길상이다. 길상이를 보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어찌 그리도 매정할 수가 있느냐 이 박복한 친구야! 보름 전에 만 연락을 했더라도 만나볼 수는 있었을 텐데...

저승사자 거시기라도 붙잡고 늘어지더라도 딸자식 시집가는 것이라도 보고 가게 해 달라고 애원이라도 해 보지...

차를 끓여온 부인은 조심스럽게 내 앞에 찾잔을 내려놓고는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앉더니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길상이의 삶을 한풀이 하듯 쏟아놓는다.

최참봉네 농막에 불을 지르고는 곧바로 서울로 가질 않고 부산으로 내려와서 부두에 막노동 일부터 시작해서 인생 밑바닥 일을 안 해 본 일 없이 전전하다가 군에 지원을 해서 월남전까지 참전을 하고는 신발 만드는 공장에 취업을 했는데 그 때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식도 못 올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고엽제 후유증으로 직장도 못 나가고 시름시름 앓다가 삼년 전 실명을 한 뒤로는 병세가 더욱더 악화돼서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나들다 결국 딸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예식장에서 말씀하신 유언이란 무슨 말씀이신지?”

힘들게 물어보자 부인은 다시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는지 잠시 말이 없더니 물 한 컵으로 묵을 축이고 나서야 다시 말을 이어간다.

숨을 거두기 하루 전 만약 자기가 숨을 거두면 화장을 해서 고향 농막 주위에 뿌려 달라고 유언을 했다는 것이다.

청첩장을 늦게 보낸 것은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다 늦게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흔쾌히 승낙했다.

그보다 더한 부탁이라도 유언으로 남겼다면 해줘야 하거늘....

길상이의 유골을 싸들고 부인과 함께 열차에 올랐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더니 부슬부슬 봄비가 내려 차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마도 저 비는 길상이의 눈물은 아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