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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요. 안돼요. 우리 서방님을 끌고 가시면 안돼요. 이 분은 오늘 과거에 합격하신 분이세요. 군관님, 잠깐만요.”
‘아니? 아지가 여길 어떻게 알고?’
“아, 아지?”
“서방님, 이게 어찌된 일이세요?”
“군관님, 우리 서방님은 그제 과거를 보셨어요. 오늘 합격자 발표를 보시고 기분이 좋으셔서 한잔 마시다 말다툼이 일어난 것 같은데 우리 서방님은 착한 분이세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아지가 사령을 끌고 모주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있다 나왔다.
“험-, 험-. 여봐라, 저 분만 풀어드려라. 어서.”
‘아니, 아지가 어떻게 하였기에 나를 풀어주지? 저 인정사정없어 보이는 사령놈이. 참으로 별일일세.’ 박달 도령은 아지의 수단에 혀를 내두르며 아지에게 고마워하였다. 모줏집에서 나온 박달 도령과 아지는 화려한 운종가를 걸었다. 상전마다 등불이 내걸리고 호객하는 소리가 거리마다 넘쳐났다.
“서방님, 어찌 되신 건데 모줏집에서 욕을 보셨어요?”
“......” 박달 도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숙이고 걷기만 했다.
“서방님, 궁금해 죽겠어요? 과거는 합격하신 거죠?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요? 어서 가요. 서방님 오시면 시작하려고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언니들도 서방님 합격을 축하해 드리려고 와 있고요.”
“......”
“서방님?”
“아지, 미, 미안하오.” 박달 도령은 아지를 한번 힐끗 보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미안하다니요? 뭐가요? 괜찮아요. 기분 좋으셔서 과거보신 분들과 함께 술 마시다 싸울 수도 있는 거죠. 괘념치 마시고 얼른 가세요.“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오. 아지.” 아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따라오는 박달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감지하고 기던 길을 멈추고 박달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서방님, 왜 자꾸 미안하다고 하세요?”
“아지, 정말로 미안하오. 낙방했소. 과거에서 낙방하였소. 으흐흐 흐흐흐......” 박달 도령의 통곡에 아지의 얼굴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서방님, 지금 저에게 농담하시는 거죠?”
“정말이오. 이번 과거에 낙방하였소. 그래서 혼자 술 한 잔 하며 울분을 삭히려고 하다가 그만 언쟁이 붙어서 그런 것이오.” 박달 도령은 길게 흐느꼈다.
“서방님, 농담이 아니라고요?”
“그렇소. 미안하오. 그대의 뒷바라지에 보답해야하는데......”
‘아아,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아, 이건 말도 안 돼. 그리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낙방이라니? 이건 아냐, 뭔가 잘못되었을 거야.’
“아지, 정말로 미안하오. 나를 용서하오.”
“으흐흐흐흐흐흐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아흐흐흐흐흐흐......” 아지는 운종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였다.
“아흐흐흐흐흐흐......”
“아지, 울지 말아요. 어서 일어나요. 미안하구려. 정말로 미안하구려. 내 그대의 정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지 못해 정말 할 말이 없소.”
“으흐흐흐흐흐흐흐흐.......” 아지는 일어날 줄 모르고 앉아서 서럽게 울면서 자신의 박덕함을 탓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박달 도령을 통하여 과거에 맺힌 한을 풀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아지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가요. 내 앞에서 사라져요. 꼴도 보기 싫으니, 어서 내 앞에서 사라지라고요. 어서요.”
“아지?”
“꼴도 보기 싫으니 어서 사라져요. 당신에게 바친 지난 정성이 이렇게 물거품이 되다니, 이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당신은 알기나 해요?”
“아지, 미, 미안하오.”
“어서, 내 앞에서 없어지라고요. 어서요. 아흐 흐흐 흐흐흐......” 아지는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박달 도령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다. 수많은 행인들이 아지와 박달 도령을 번갈아 보면서 입을 삐쭉 내밀기도 하고, 자기네 기리 귓속말로 뭐라고 소곤거리며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아지, 미안하오. 하늘이 나를 돕지 않으니 어찌하오. 나는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였고, 나름대로 소신 있게 과거를 보았다고 자부하였는데 이리된 것을 어쩌란 말이오? 용서하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잖소? 미안하오. 아지, 어서 일어나구려.”
“비켜요.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난, 당신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는데, 이제 수포로 돌아갔으니 당신을 더 이상 볼 일 없어요. 어서 내 앞에서 사라져요. 어서요.” 아지가 다시 한 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박달 도령은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비실거리며 목멱산 쪽으로 걸어갔다.
‘바보, 멍청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도 낙방하다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을까? 아니야, 분명히 사람 하나는 제대로 골랐는데 왜 낙방하였을까? 낙방할 이유가 없는데. 바보, 바보.’ 아지는 혼자 중얼거리며 운종가를 배회하였다.
“아아, 서방님, 언제 오시는 거예요? 열흘 후면 뵐 수 있는 거죠? 열흘도 너무 길어요. 닷새나 엿새 정도 내로 오셔야 해요. 저와 약속하셨잖아요. 합격하면 제일 먼저 저에게 달려오시겠다고요? 보고 싶어요. 흐흑 -” 금봉이 박달 도령과 헤어질 때 한 약속을 수백 수천 번도 더 되뇌면서 하염없이 북녘 하늘만 바라보았다.
휘익 -. 바람이 한번 불자 눈보라가 이등령으로 불어왔다. 마치 금봉이의 기도에 답하려는 박달 도령의 소식이라도 전해주려고 하는지 하얀 눈보라가 뽀얗게 하늘을 덮었다. 그 바람에 금봉이 붉은 치맛자락이 펄럭였다. 눈보라 속에 휩싸인 금봉이를 조금 떨어진 숲속에서 바라보던 갑돌이의 가슴은 찢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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