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를 얼마나 많이 따 먹었는지 입술은 자주색 립스틱을 바른 듯 꼴이 우스워 깔깔거리고 웃자 범수와 명철이도 나를 보더니 배꼽이 빠져라 웃는다.”

가래침을 끌어올려 마당 바닥에 패댁질을 치고는 대문턱을 넘는데 “야! 금방 밥 먹고 나갈테니 밖에서 기다려라” “기다리긴 뭘 기다려. 버찌는 저런 애들이나 먹는 것이지 너는 먹으면 안돼 그러니 얼른 밥 먹고 공부나 해라.” “엄마 오늘 왜 그러세요?”

같이 놀러를 못가 애가 타는 상현이 목소리를 뒷등으로 들으며 대문을 나서는데 뒤따라 오는 범수도 배알이 꼴리는지 고개를 돌려 상현이 어머니를 노려보면서 “씨팔! 동냥을 못 줄바에는 쪽박이나 깨지 말지 동냥도 안 주면서 쪽박까지 깨려고 난리여” “야! 상현이 대신 명철이 데리고 가자” “그래” 우리는 그 길로 명철이네 집으로 내달렸다.

“명철아!” 돼지 멱따는 소리로 범수가 부르자 “나 부엌에 있으니 이리로 와라” 부엌으로 오라니? 혹시 먹을 것이라도 있나 싶어 부엌으로 가보니 명철이 녀석 두손으로 커다란 물바가지를 내밀며 꿀물이니 마셔 보란다.

“꿀물이라고?” 꿀물소리에 범수가 물바가지를 빼앗듯 받아들고는 숨도 안 쉬고 단숨에 반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는 내 앞으로 불쑥 바가지를 내밀며 마시란다.

마셔보니 달다 못해 조금 쓴 맛이 나는 것을 보니 꿀물이 아니라 사카린을 풀은 물이다.

명철네나 우리집이나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꿀이 있을 턱이 있나? 하지만 사카린 물도 지금은 꿀맛이다.
반바가지나 되는 물을 단숨에 마셨더니 뱃속에서 물이 출렁거리며 밖에 홍수가 났나 아니면 물에 빠졌나 난리법석을 떨어댄다.

물로 가득찬 배를 앞세우고는 버찌 따 먹으러 벚나무 골로 가려고 싸리삽작을 나서려는데 제비 한쌍이 안마당을 팽이처럼 돌며 “지지배배 지지배배” 다급하게 울부짖는다.

갑자기 제비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 제비집을 올려다 보니 제비집에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 벌어져서 하마터면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제비집에는 한발은 넘을 듯한 커다란 구렁이가 서까래에 몸을 칭칭 감고는 제비새끼를 잡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범수와 명철이도 구렁이를 보고 놀랐는지 뒷걸음질을 치더니 “구렁이가 제비새끼 잡아먹어요!” 동네가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자 길을 가던 춘호형님이 뱀소리를 듣고는 달려와 제비새끼를 몽땅 잡아먹은 구렁이를 잡아가지고는 횡재라도 한 듯 휘파람까지 불며 간다.

졸지에 새끼를 잃은 어미 제비는 애간장이 녹아내리는지 빈집을 들락거리며 오열을 토해내듯 짹짹 거린다.
바로 그때 이웃집으로 볼일을 보러가셨던 명철이 할머니가 집에 오시다 그 광경을 보시고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물러 앉으면서 “아이고! 이제는 우리집도 망했다. 망했어” 집안이 망하다니? 제비새끼를 잡아먹은 구렁이를 잡았을 뿐인데 왜 집안이 망했다는 걸까? 이해가 가질 않아 여쭤 봤더니 “그 구렁이는 우리집을 지켜주는 업인데 그 업을 잡았으니 망한 것이지 이놈아!” “할머니 업이 뭐예요?” 범수도 궁금했는지 명철이 앞으로 다가 앉으면서 묻자 “너희들은 몰라도 되니 밖에 나가 놀아라. 정신없다.” 버럭 고함을 치시는 바람에 깜짝놀라 명철이네 집을 나와 벚나무 골로 치달았다.

저마다 벚나무를 하나씩 골라 원숭이처럼 벚나무가지에 올라 앉아 흑앵두같은 버찌를 한 주먹 따서 입안에 털어 넣으니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강한 버찌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봄의 참맛을 느껴본다.

한참동안 정신없이 버찌를 따먹다 보니 배도 부르고 이가 시려 벚나무을 내려오니 범수와 명철이도 벚나무에서 내려오는데 버찌를 얼마나 많이 따 먹었는지 입술은 자주색 립스틱을 바른 듯 꼴이 우스워 깔깔거리고 웃자 범수와 명철이도 나를 보더니 배꼽이 빠져라 웃는다.

벚나무 골을 빠져나와 밀보리가 익어가는 들판으로 나서니 애기똥풀 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우리를 반기고 콧속으로 밀 보리 익는 내음이 솔솔 파고들어 밀서리를 해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데 앞서 가던 범수가 뒤를 돌아보며 “밀서리 해 먹을래?” “나도 지금 그 생각 했는데.” 명철이도 낟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범수는 밀을 뽑으러 가고 명철이와 나는 나무를 해 가지고 와 불을 피우자 범수가 밀을 한 아름이나 뽑아가지고 와 이글거리며 타 올라가는 불태미 속에 던져 넣자 밀은 금새 호두둑 거리며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