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했던 순희 어머니는 한평생 수절을 하시며 팔순을 넘기실 때까지 고고하게 사시다가 몇 해 전 어느 따뜻한 봄날 봄바람을 타고는 순희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로 가셨다.”

체머리를 흔들어 쓰잘데 없는 추악한 생각을 봄바람에 모두 날려 보내고는 어깨에 메고 있던 새끼타래를 끌러 봄바람이 떠이고 가려는 이엉자락을 무릎으로 짓누르고는 그물을 엮듯 바람에 들떠 펄럭거리는 이엉자락을 총총하게 엮어 나가자 난장판처럼 들썩이던 이엉자락이 들썩거림을 멈추고 마치 잠자리에 들기라도 한 듯 조용하게 누워있다.

순희 어머니도 그제 서야 마음이 놓이시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눈물이 맺혔던 서글서글한 눈가에는 이웃의 따뜻한 온정에 대한 고마움인지 아니면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인지  또다시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순희 어머니! 지붕은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니 그만 내려가시죠?”

“총각! 고마워”

 “고맙기는요 제가 뭐 한일이 있다구요...”

 “총각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 집은 서까래만 남고 용마름이나 이엉은 봄바람에 몽땅 날아가 버렸을 거야”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이고는 이엉자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점심을 차리시겠다며 지붕에서 내려가시려고 살포시 일어서신 순희 어머니는 사다리를 붙잡고 발을 옮기려는 찰나 나 때문에 이엉자락을 못 벗긴 한을 순희 어머니에게 풀기라도 하려는 듯 심술궂은 봄바람이 순희 어머니 치마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하늘로 떠이고 갈 듯 요동질을 치자 갑자기 속치마가 하늘로 솟구쳐 심청이가 임당수 뱃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듯 씌우고는 깃발을 날리듯 펄럭거리자 순희 어머니는 치마를 끌어 내리려고 허둥대는데 나는 그만 보지 말아야 할 순희 어머니의 허벅지를 보고는 너무나도 놀라 하마터면 지붕에서 굴러 떨어져 장가도 못 가고 몽달귀신이 될 뻔했다.

순희 어머니의 허벅지는 백옥보다도 더 곱고 예쁠 줄 알았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순희 어머니 허벅지는 보기조차 끔찍할 정도로 허벅지 양쪽이 푸르스름하게 피멍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불치병이나 희귀병을 앓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저런 몹쓸병을 앓고 계시니 그 좋은 재혼자리도 모두 싫다 하시고 혼자 사시는 것이로구나.

조금 전까지 순희 어머니에 대한 환상은 부딛혀서 깨어지는 파도처럼 산산히 부서져 깨지면서 더는 순희 어머니를 쳐다보기조차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어 한시라도 빨리 순의 어머니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높은 지붕에서 껑충 뛰어내려 걸음아 날 살리라고 줄행랑을 놓는데 등 뒤에서는 “총각! 점심도 안 먹고 그냥가면 어떡해.” 청아한 순희 어머니의 맑은 목소리가 봄바람에 실려 귓속을 파고 든다.

그래도 나는 못들은 척 도망을 쳤다.

그날 그 이후로는 골목길을 오고가다 가끔씩 순희 어머리를 만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외면을 하곤 했다.
내가 존경했던 순희 어머니는 한평생 수절을 하시며 팔순을 넘기실 때까지 고고하게 사시다가 몇 해 전 어느 따뜻한 봄날 봄바람을 타고는 순희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로 가셨다.

환갑을 훌쩍 넘긴 이 봄날 옛일을 생각해 보니 순희 어머니의 허벅지 피멍자국은 몹쓸 병이 아니라 뭇 사내들이 유혹을 할 때마다 피멍이 들도록 꼬집어서 생긴 상처임을 이제야 알았으니....

그동안 순희 어머니를 오해한 우둔한 놈을 순희 어머니 부디 용서하소서...

오늘도 그날처럼 심술궂은 봄바람이 사납게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