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다른 생각에 골똘해 있을 때 “야 임마! 빨리 안 오고 뭘 해?” 앞서 가던 영길이가 고함을 지른다.

 “뭣 좀 생각하느라고.”

“무슨 생각?”

“그건 알거 없고 얼른 가기나 해라”

 “야 무슨 일인지 나도 좀 알자”

 “니가 알면 너희 집 큰일 난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내가 알면 우리집에 큰일이 난다는 거냐?”

“영길아! 날씨가 추워서 입이 얼었는지 헛소리가 나온다” “썩을 놈! 싱겁긴...”

영길이도 제 큰형이 지난간 여름 한 짓거리를 안다면 집을 뛰쳐 나갈 놈이니 그날 일은 나만이 알고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이제 작은 산모퉁이 하나만 돌아서면 성황당이다. 다른 날 같으면 잠시도 입을 붙이고 있을 친구들이 아닌데 오늘은 날씨가 추워 입이 얼어서 그런지 아니면 성황당이 무서워 그런지 모두 다 꿀먹은 벙어리다.

잠시 후 돼지고기에 환장을 한 우리친구 여덟명은 무사히 성황당 앞에 당도했다. 손과 발은 꽁꽁 얼어빠지기라도 할 듯 아리고 쓰려 감각조차도 없고 얼굴은 살가죽이 얼어 터지기라도 할 듯  아프다.

초승달도 어느새 서산마루에 걸려 있고 건너편 숲에는 깊은 밤을 알리려는지 부엉! 부엉! 부엉새가 운다. 성황당을 올려다 보니 문은 활짝 열려있고 고사를 지낼 때 켜 놓은 촛불은 아직도 꺼지질 않고 성황당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야! 돼지머리와 떡은 창수와 내가 가져올테니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언제나 우리들 대장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길상이가 창수를 데리고 성황당으로 올라가며 우리를 보고 기다리고 있으란다.  그렇잖아도 나보고 가자고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을 했는데 참으로 잘된 일이다.

형철이도 성황당에 안 올라가게 된 것이 천만다행인 듯 폴싹거리고 뛰며 꽁꽁언 발을 녹이려고 안달복달을 하고 있는데 뽀드득 거리는 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성황당으로 올라간 길상이와 창수가 돼지머리와 떡시루를 끌어 안고는 주둥아리로는 밤을 까먹는지 우물거리면서 성황당 문을 나서며 “야들아! 돼지머리가 무진장 크다! 우리 오늘밤 포식하겠다.”

포식한다는 말에 기분은 하늘을 날 듯 좋아지고 두 팔에는 불끈 힘이 솟는 것만 같다.

“야! 우리 집에 갈 때는 뛰어서 가자” 형철이도 돼지고기 먹을 생각에 한시가 급하다는 듯 빨리 가자고 너스레를 떠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야! 너희들 나 좀 보고 가라” 갑자기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혹시 성황당 귀신들이 허락도 없이 제물 가지고 간다고 우리를 불러 세우는가 싶어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키가 허드레 장승같은 놈 다섯이 떠억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너! 너! 너희들 누구냐?” 뱃장 좋고 힘도 천하장사인 길상이도 갑작스런 일에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거린다.

"그것은 알 것 없고 돼지머리나 놓고 가라”

“돼지머리를 놓고 가라고?”

“빨리 내놓고 가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야”

“못 주겠다면?”

 “그러면 오늘이 너희들 제삿날이 되는 거지”

아랫마을 놈들도 돼지고기 생각에 눈길을 걸어왔건만 한발 늦어 허탕을 치게 되자 싸움을 해서라도 돼지머리를 빼앗아 갈 생각인지 시비를 건다. “야! 너희들 깡패냐? 남을 것을 빼앗으려 하게”

“ 그래 깡패다”

“ 뭐 이런 거지 발싸개 같은 깡패새끼들이 있어?”

“뭐? 거지 발싸개?”

“깡패면 깡패 다워야지 남의 동네 고사제물 뺏으러 하는 놈이 깡패는 무슨 깡패냐 거지지”

“너 말 다했어?”

“그래 다했다 어쩔래?”

“돼지머리만 주면 그냥 곱게 돌려보내주려고 했더니 맞고 주겠다 이 말이지?”

“거지 발싸개 같은 놈들이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나불거리는데 돼지머리를 가져가고 싶으면 어디 한번 가져가 봐라”

길상이도 기 죽지 않고 기세 등등 깡패와 맞서자 깡패란 놈 처음과는 달리 목소리가 작아진다. “돼지머리가 아니더라도 너 같은 촌놈은 내 주먹 맛을 한번 봐야 정신을 차리겠나”

드디어 길상이와 깡패가 한바탕 붙으려는지 폼을 잡고는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겁이 많은 형철이는 여차직 하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려고 뒤로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는데 옆에서 깡패란 놈을 노려보던 영길이가 성큼 깡패앞으로 나서며 “너! 용하지?”

 “용하? 나 그런놈 몰라”

기선제압을 할 속셈인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깡패란 놈이 펄쩍 솟구쳐 오르더니 앞발로 영길이 복장을 걷어차자 영길이가 고목나무 쓰러지듯 눈위로 벌러덩 나자빠지자 그 것을 신호로 패싸움이 벌어졌다.

주먹이 오가고 발길질이 허공을 가르고 몇몇은 서로 끌어안고는 눈위를 뒹군다. 그러나 그 싸움은 시작 전부터 우리가 이기게 돼 있었다.

아랫마을 놈들보다 우리가 서너명 많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싸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길상이 손에 들려 있는 돼지머리 때문이었다.

돼지머리를 갖고 있는 길상이가 아랫마을 놈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돌아가며 대갈통을 돼지머리로 한방씩 쳐 갈기자 아랫마을 놈들은 모두 다 개구리 뻗듯 쭉 뻗어버렸다.

우리도 물론 그 놈들한테 몇 대씩 얻어 터져 입술이 당나발이 된 친구도 있고 쌍코피가 터진  친구도 있지만 아랫마을 놈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셈이다.

먹거리로 적을 물리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다. 임진왜란 때 고춧가루를 뿌려 왜적을 물리쳤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돼지머리로 깡패들을 물리쳤다는 소리는 전무후무한 이야기가 아닐까?

성황당 고사를 지내려고 사다놓은 돼지머리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날 밤 일이 새록새록 새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