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이는 어느새 땡삐에 엉덩이를 쏘인 듯 개울을 건너 불맞은 맷돼지처럼 건너편 산으로 도망질을 친다. “길상아 같이 가자” 나 또한 천둥에 놀란 개 뛰듯 죽을힘을 다해 건너편 산 능선을 넘으려는데...“

높은 산은 아직도 잔설을 이고는 오들오들 추위에 떨고 있건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속에는 상큼한 남녘의 봄내음이 물씬 묻어난다.

겨울 삼동 혹한 속에서 행여나 동사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던 뜰 앞의 벚나무가 남녘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머금고는 메마른 가지 가득 숫처녀 가슴인양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망울을 달고는 춤을 추듯 하늘거린다.

이맘때면 난 어린시절 산불을 냈던 일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면서 입가로는 쓴웃음이 번져나곤 한다.

그날도 봄바람이 사납게 불어 행여 봄바람에 초가지붕의 이엉이 걷히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놀러도 못가고 쥐새끼 풀빵구리 드나들듯 문풍지가 울 때마다 밖으로 나와 지붕을 쳐다보고 있는데 길상이가 찾아왔다.
“봄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마음도 싱숭생숭 한데 넌 방구석에 쳐박혀서 뭘 하냐?” “우리집 지붕 좀 쳐다봐라 놀러갈 수 있겠나.” “별걱정 다하고 있네. 내가 보니 너희 집 지붕은 태풍이 불어도 끄떡도 않겠더라” “만약 오늘 같은 봄바람에 너희 지붕이 걷히면 내가 이엉 엮어 얹어줄게.”

“그러니 밤나무골 가서 가재나 잡아 구워먹자”

길상이와 나는 가재를 잡아 구워 먹으려고 곧장 밤나무골로 달려갔다. 그 해 겨울은 유독 눈이 내리지 않아 말이 개울이지 물조차 흐르질 않았다.

“길상아! 공연히 헛걸음질만 친 것 같다.”

“개울이면 물이 흘러야 하는데 물이 흐르지 않는데 가재인들 살 수 있겠냐?”

“야 임마! 개코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 마라.”

“가재는 바위 밑이나 굴속에서 산다는 것을 모르냐?”

반신반의 하며 길상이 행동을 지켜보기로 마음먹고는 개울둑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개울바닥으로 내려선 길상이가 옷소매를 걷어 오리고는 “야! 너는 가재 뀔 꿈지나 준비해라.”

길상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코웃음을 치고 있는데 힘이 장사인 길상이가 허리를 구부려 커다란 바위 하나를 잡고는 불끈 힘을 쓰자 바위가 맥없이 벌러덩 뒤집어지는데 바위 밑에는 물이 자작자작 고여 있고 놀랍게도 그 물속에슨 절지동물인 가재 두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는지 꼼짝도 하질 않고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잡은 가재는 둘이 구워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잡았다.

그때 길상이가 “야! 우리 저기로 가자” 길상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그 곳은 최부자 어른이 신주단지 모시듯 지극정성을 다해 돌보는 참봉벼슬을 지냈다는 최부자 선조 묘소가 아닌가? “너 미쳤냐? 저기가 어디라고.” “그까짓 능참봉이 뭐 그리 대단한 벼슬이라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푹신한 잔디밭에 앉아 구워먹자”

길상이 최참봉네 묘소로 올라서며 내게 가재 구울 나무를 해오란다. “에라 모르겠다. 먹고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나중에 산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구워먹고 보자.”

길상이 말대로 나무를 해다 최참봉 어른 묘둥지 앞에 수북히 쌓아놓고 는 그위에 가재 꿈지를 올려놓고 불을 붙이자 봄바람이 강아지 꼬리치듯 살랑살랑 불어와 금새 불은 노래라도 부르듯 화다닥 거리며 빨간 불꽃을 하늘 속으로 치올리자 불태미 속 가재들은 온 몸이 빨갛게 변하면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가재가 다 익은것 같은데 지금 꺼내 먹으면 안 될까?” “그자식 급하긴 가재는 보기에는 저렇게 다 익어 보여도 아직은 덜 익었어. 그러니 아무리 가재가 먹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라”

길상이는 가재가 잘 골고루 잘 익도록 긴 막대기로 가재 꿈지를 뒤적이고 있는데 바로 그때 “휘~익!” 하고는 한 무리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가재를 굽는 불태미를 똘똘 말아 끌어안고는 하늘로 승천하듯 솟구치더니 봄불도 뜨거웠는지 묘 둥지에 골고루 불을 흩뿌려 놓고는 도망치듯 훌쩍 산을 넘어간다.

“길상아! 봄바람이 우리 가재 몽땅 다 가져갔다. 이걸 어쩌냐?”

“야! 이 염병할 놈아 지금 가재가 문제냐?”

“저길 좀 봐라! 저길” 길상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일순 정신이 번쩍 든다. 회오리바람이 끌어안고 올라간 모닥불을 허공에서 흩뿌려 놓자 불덩어리는 최참봉네  묘 둥지에 골고루 떨어져 묘 둥지는 금새 불밭으로 변해 버렸다.

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벌어지고 말았다. 조금전까지 조용하던 가슴은 후당당 거리며 마구 뛰고 눈알은 튀어나올 듯 크게 떠진다. 이 일을 어쩐다. 돌멩이로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 멍한 채 서 있자 “야 임마! 빨리 불 안 끄고 뭘 해?”

길상이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상이는 솔가지를 꺾어 들고는 미친 듯이 불을 끈답시고 뛰어다니는데 잠간 사이 재묻은 강아지 꼴이 되어 있다.

나도 얼른 솔가지를 꺾어들고는 불을 꺼보지만 봄바람을 등에 업은 봄불은 어찌나 거세게 타오르는지 둘이서 불을 끈다는 것은 마치 바가지로 활활타는 초가삼간의 불을 끄는 꼴이다. 길상이도 그걸 깨달았는지 불을 끄던 솔가지를 내팽개치고는 “야! 도망가자” 길상이 말이 백번 옳다.

사람의 힘으로는 끄지 못할 봄불을 끄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는 불이 꺼지기도 전에 최부자 영감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구워 놓은 가재를 맛도 못보고 가려니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재가 대수인가?

길상이는 어느새 땡삐에 엉덩이를 쏘인 듯 개울을 건너 불맞은 맷돼지처럼 건너편 산으로 도망질을 친다. “길상아 같이 가자” 나 또한 천둥에 놀란 개 뛰듯 죽을 힘을 다해 건너편 산 능선을 넘으려는데 “땡땡땡땡...” 다급하게 울어대는 불종소리가 봄바람에 실려 귓속을 파고든다.

누군가 산불이 난 것을 보고는 마을 한복판에 높다랗게 걸려 있는 종을 팔이 빠져라 두드려 대는 모양이다. 죽을힘을 다해 산을 넘었더니 숨이 턱에 찬다. 길상이도 숨이 차 더는 못 달리겠는지 산에 벌러덩 드러누워 식식 거리며 가쁜 숨을 고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