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통같은 배를 끌어안고 집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앞이 안보이도록 쏟아지던 눈도 그치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반짝거린다.”

이번 기회에 닭을 어떻게 잡는지 잘 지켜보리라 마음먹고는 길상이 닭 잡는 모습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데 장닭 앞으로 다가선 길상이는 제 놈 닭인 양 꼬꼬 거리면서 팔을 뻗어 장닭 발밑으로 밀어 넣자 신기하게도 장닭이 길상이 팔뚝위로 냉큼 올라선다.

오라 닭은 저렇게 잡는 것이로구나!

닭이 팔뚝위로 올라서자 길상이란 놈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살금살금 뒷걸음질을 쳐 막 헛간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영길이네 안방 문이 덜컥 하고 열리더니 누군가 마루로 나오신다.

순간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으면서 숨까지 멎는다.

닭고기가 코앞에 와 있는데 하필이면 이 때 주인이 나올게 뭐람... 가슴속에서는 조바심이 난다.

혹시 꼬꼬거리는 닭소리를 듣고 나오신 것은 아닐까? 이럴 때는 삽심육계 줄행랑이 최고가 아닌가? 길상이 팔뚝에 올라앉아 있는 장닭은 주인 모습을 보고는 도둑이 들었다고 알리려는지 조금 전보다 더 큰소리로 “꼬꼬꼬”거리며 금방이라도 영길이네 마당으로 날아갈 듯 날개를 움찔거린다.

“야! 도망치자”

길상이 귀에다 모기소리로 소근 대자 길상이가 주둥아리 닫고 가만히 있으라고 뒷발질을 해 댄다. 마루에서 봉당으로 내려서시는 분은 바로 영길이 아버지다.

우리가 닭서리 하러 온 것을 알고 나오신 것일까? 가슴은 두근반 세근반 마구 뛰고 오줌까지 마렵다. 영길이 아버지께서 닭장으로 들어오시는 날에는 오늘이 우리 제삿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봉당으로 내려서신 영길이 아버지는 더듬더듬 신발을 찾아 꿰고는 허리를 펴시더니 눈 오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시며 “눈 참 잘 온다. 섣달은 칠월 맞잡이니 금년여름엔 장마 지겠군.” 한마디 하시더니 허리춤을 움켜잡고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뚫고 불이나케 뒷간으로 달려가신다.

오라! 뒷간이 급해서 나오셨구나. 그제야 후당당 거리던 가슴은 가라앉고 불안하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진다.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길상이가 팔뚝에 닭을 올려놓은 채 까치발로 헛간을 빠져나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질을 친다.

“길상아 같이 가자.”

눈길에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겨우 길상이 곁으로 다가서자 “동생! 이 형님 닭 잡는 솜씨 봤지?”

오살할 놈! 나이도 한살 적은 놈이 닭서리 잘하는 것도 자랑이라고 꼴값을 떠는 꼴이란 눈뜨고는 봐줄 수가 없어서 눈을 뭉쳐 힘껏 던졌는데 맞으라는 길상이는 안 맞고 장닭이 정통으로 맞아 눈 위에서 퍼드덕거리자 길상이가 잽싸게 달려들어 장닭 모가지를 비틀어 가슴속에 쑤셔 넣고는 창수네 집으로 가자며 보무도 당당히 눈길을 걸어간다.

함박눈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지고 골목길은 오가는 사람도 없이 쥐죽은 듯 고요해 거칠 것 하나 없이 골목길을 당당하게 걸어 창수네 안마당으로 들어서니 창수와 형철이는 꽁꽁 언 감자구덩이를 어떻게 뚫었는지 감자 두 양동이를 꺼내 부엌바닥에 쏟아놓고는 퍼질러 앉아 아궁이 가득 감자를 넣고는 굽느라 정신이 없다.

먹는 것이 뭐 길래 섣달 설한풍에 감자서리를 해온단 말인가? 참으로 지독한 놈들이다.

“감자 많이 꺼내 왔냐?”

넉살좋은 길상이가 너스레를 떨며 부엌으로 들어서자 창수란 놈이 눈알을 부라리며 “의리라고는 파리 뭐 만치도 없는 놈들아! 씨감자 서리는 도둑질보다도 더 나쁜 짓이라고 하던 놈들이 우리 콩밥 먹이려고 다시 왔냐?”

 “이 썩을 놈 말하는 것 좀 봐. 우리보고 감자 먹으라고 고사를 지내봐라. 먹나.”

길상이가 빈정거리자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자빠졌네.” 말수가 적은 형철이도 배알이 꼴리는 지 한마디 씨부린다.

“감자는 너희들이나 배 터지게 처먹어라. 우린 닭 삶아 먹을 테니.”

 “뭐? 닭을 삶아 먹어?” 닭소리에 형철이란 놈 귀가 번쩍 뜨이는지 눈에 불을 켜고는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  보더니 “야 이 똥싸게 같은 놈들아! 닭도 없는 놈들이 닭 똥 싸는 소리하고 있네?”

“야! 너 눈이 있으면 잘 봐라. 이건 닭이 아니고 뭐냐?” 길상이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품속에 있던 장닭을 꺼내놓자 창수와 형철이가 아가리를 바소구리 만하게 벌리고는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에헤라 디어!” 노래까지 불러댄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섣달그믐 밤! 장닭 잡고, 감자 구워 개다리소반에 올려놓고는 배를 두들겨 가며 원 없이 먹었다. 물론 닭 주인인 영길이도 불러다 함께 먹었다.

영길이란 놈 소경 자기네 닭 잡아먹은 줄 모르고 “자다가 이게 웬 떡이냐”며 허겁지겁 먹어댄다.

요놈 지금은 꿀맛이겠지만 내일 아침이면 똥먹은 개상을 해 가지고는 나자빠지겠지?

북통같은 배를 끌어안고 집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앞이 안보이도록 쏟아지던 눈도 그치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