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봉이가 그 박달 도령인지 뭔지하는 사내와 배꼽을 맞추었다는 것이 사실은 사실인 모양인가보네?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니 말이여?”

개똥이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신이 나서 갑돌이에게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 하였다.

 “야, 임마. 네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말어. 네가 금봉이와 그 박달도령이 배꼽 맞추는 걸 봤어? 사내놈이 입이 촉새처럼 가벼워서 뭐할래?” 

 “아니,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동네에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너는 귀도 없냐? 지금 온 동네가 금봉이 때문에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난리들인데.”

개똥이는 일부러 더 신이난 듯 갑돌이 눈치를 보며 입에 거품을 물고 금봉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너, 개똥이 임마. 내가 경고하는데 한번만 더 금봉이와 관련된 근거 없는 이상한 이야기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명심해 임마. 정말이야 또 그 따위 이야기하면 가만 안 둔다.”

갑돌이가 주먹을 치켜들면서 곧 개똥이를 내려칠 기세였다.

 “뭐야? 야, 새끼야, 네가 뭔데 그래? 네가 금봉이 서방이라도 되는 거야? 정말 살다 살다 별 요상한 말을 다 듣겠네. 수돌이는 가만히 있는데 네가 뭔데 지랄이야. 지랄이. 염병할.”

개똥이는 갑돌이와 동네 청년들을 번갈아 보면서 큰소리 쳤다.

 “뭐라고? 개똥이, 너 이 새끼, 오늘 나한테 죽어볼래.”

수돌이네 사랑채에서 동네 총각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갑돌이와 개똥이가 주먹다짐을 하자 난리가 났다.

 퍽-, 퍽-.

약이 잔뜩 오른 갑돌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몽둥이를 들고 개똥이를 두들겨 팼다. 개똥이 머리통이 깨지면서 피가 흐르고 죽겠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동네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말렸지만 워낙 완력이 강한  갑돌이는 개똥이를 계속 두들겼다.

 “너, 이 새끼 한번만 더 그런 얘기 하면 아주 죽여 버릴 거여.”

겨우 친구들이 갑돌이와 개똥이를 떼어 놓았지만 갑돌이는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갑돌아, 너무했다. 그래도 친구인데 친구를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개 패듯 하면 쓰니?”

갑돌이에게 매 맞은 개똥이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죽겠다고 발버둥 쳤다. 개똥이의 비명을 듣고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들었다.

 “개똥이 놈이 동네방네 다니면서 금봉이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하지? 저런 변변치 못한 놈 같으니라고. 그러니 갑돌이에게 매를 맞지. 그놈은 매를 맞아도 싸.”

갑돌이는 개똥이를 흠씬 패준 것이 하나도 잘못한 게 없다고 동네 어르들은 생각했다.

 “네가 너무한 거 같어. 개똥이를 저리 개 패듯 해놨으니 당분간 동네가 시끄럽겠어. 빨리 금봉이 일이 잠잠해져야 하는데......”

 “그 착하디 착한 금봉이가 어째서 동네북이 돼야 하는 거여? 나는 도대체 왜 금봉이가 동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못 마땅해. 제 딸년들은 이놈 저놈하고 붙어 다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어쩌다 금봉이네 집에 훤칠한 과객이 며칠 묵었다고 샘이 나서 근거도 없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녀? 빌어먹을 여편네들. 아니지, 여편네들이 아니고 주둥이가 가벼운 몇몇 사내놈들 때문이지.”

갑돌이 술잔을 비우고 휑하니 수돌이네 사랑채에서 나가버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박달 서방님께서 몸 건강히 과거공부에 전념하도록 도와주소서. 이 소녀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달님이 측은한 시선으로 산촌의 착한 소녀 금봉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님, 달님, 우리 박달 서방님 소식을 아시는지요? 우리 박달 서방님께서 하루 세끼 밥 잘 드시고, 과거준비에 열심히 하시는지요? 달님, 박달 서방에게 요상한 기운이나 마(魔)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아, 정말 금봉이가 밤마다 천지신명에게 지성을 드린다고 하더니 참말이었구나. 그럼, 나는 뭔가? 지금까지 금봉이 하나만 바라고 살아왔는데,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으흐흐 흐흐......’

갑돌이 금봉이가 장독대 앞에서 천지신명님에게 지성 드리는 소리를 듣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금봉이와 허물없이 지내온 터였다.

또한 언제부턴가 금봉이를 마음속에 두고두고 은연중 마을 총각들에게 자신이 금봉이의 배필로 적당하다는 소리를 하고 다녔으며, 동네 사람들은 갑돌이와 금봉이가 언젠가는 부부의 연을 맺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그놈이 우리 마을에 찾아와 이런 평지풍파를 만들었단 말이더냐? 아아아, 나는 이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십년 공들인 것이 하루아침에 도루아미타불이 되었더란 말이냐? 아흐흐흐흐흐......’

갑돌이 담장에 기대어 소리 없이 흐느끼며 가슴을 쳤다. 어릴 때부터 스스럼없이 지내온 금봉이가 어느 날, 난데없이 찾아 온 과객 하나 때문에 변해 버린 것에 대하여 갑돌이는 진작 금봉이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