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내토중학교장

이  성   범

어둠이 짙게 깔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좀 환했는데 참으로 겨울의 낮은 짧기만 하다. 해마다  한해의 끝자락인 이맘때가 되면 다사다난과 송구영신이라는 단어가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얼마 전 평소에 존경하는 지인으로부터 달라이 라마와 빅터 챈이 공동 저작한 용서라는 책을 선물로 받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본서에서 달라이 라마가 늘 강조하듯이 모든 생명가진 존재는 행복을 최대의 목표로 삼는다. 세속적인  행복뿐만 아니라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이상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전생에 걸쳐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며 그것은 또 다른 생의 비극을 가져오는 인과관계로 이어진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질투와 원한의 감정이다. 이부정적인 감정들은 행복 그리고 인간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며 그 장애물을 뛰어넘는 유일한 길이 용서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차원에서나 큰 공동체차원에서나 상처는 깊고 오래간다. 종교를 통해 늘 용서의 의미와 가치를 설득당하지만 현실에서 우리에게 부당하게 상처를 안겨준 이들에 대한 감정의 골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여기 용서에 대한 용기를 주는 글이 있어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일그러져서 그녀가 한때 아름다웠다 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 부부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들을 몹시 힘들게 했다. 그 딸은 엄마의 흉측한 얼굴 때문에 늘 불행했고 창피해했다. 이 무정한 딸은 엄마에 대한 어떤 애정 표현도 하려하지 않았다.

남 앞에 엄마와 함께 있기를 피했고 집에 친구들도 절대 데려오지 않았다. 엄마는 이런 딸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그 딸은 나이가 들면서 더 잔인해지고 더 멀어져갔다.
딸이 대학을 막 졸업했을 무렵 엄마가 중병이 들어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아빠는 외동딸인 그녀에게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전화를 걸었다.

억지로 온 딸의 화난 얼굴을 본 아빠는 병실 문을 막아서며 이렇게 말했다. "이젠 네가 알아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네 엄마는 너에게 항상 자애로웠고 엄마에 대한 네 감정을 늘 이해해주었지. 네가 엄마와 함께 있기를 창피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야.

사실 엄마가 어떻게 화상을 입었는지 너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여태껏 약속을 지키느라 가만있었지만 이제는 네가 알아야 할 것 같구나.
네가 겨우 6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우리 집에 불이 났단다. 넌 엄마를 꼭 닮아 너무도 예뻤지. 엄마는 결코 너를 잃을 수 없어서 소방관들이 못 들어가게 붙잡은 팔을 뿌리치고 불타고 있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너를 구했단다. 너를 위해 기꺼이 자기 생명을 포기한 게지.

그 험악한 불구덩이 속에서 널 안고 나온 엄마는 눈물범벅이 된 채 피비가 다 녹아내렸고, 그리고 평생 그러 흉한 얼굴로 살게 되었단다.

하지만 네 엄마는 네가 안전하고 상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뻤고 네가 엄마 얼굴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며 자라길 원치 않았던 거야. 이제는 네가 엄마의 마음을 좀 이해할 수 있겠지"

 그 딸은 죽어가는 엄마가 누워계신 병실 바깥에서 찢어지는 가슴을 알고 떨고 있었다. 자기가 뱉었던 몹쓸 말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엄마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엄마를 비웃으며 낸 상처들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기 엄마가 자기를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이해했다. 병실로 들어섰을 때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얬다.

그 엄마를 향해 이 딸이 몸을 던지며 울부짖었다. "엄마, 정말 미안해요. 절 용서해주실 수 있겠어요? 전 엄마가 절 얼마나 사랑했고 저 때문에 얼마나 고통당하셨는지 말랐어요. 제가 너무 부끄러워요."

 그 딸은 엄마의 얼굴에 마음껏 키스를 퍼부었다. 엄마는 20년 동안 인내하며 딸의 사랑을 기다려왔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가 속삭였다. "내 사랑하는 딸아, 난 널 이미 용서 했단다"

이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용서는 포기나 망각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이다. 원망이나 복수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면의 성숙이 필요하고, 내면의 성숙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일찍이 달라이 라마는 만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나간다면 내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질 뿐이다.

하지만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그 즉시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라고 한 말이 무딘 가슴을 짓누르곤 한다. 우리 모두 무거운 마음의 짐을 털어버리고 새해에는 더욱 높게 더욱 넓게 비상하자.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행복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