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아가, 날씨가 차구나. 방에 들어가 몸 좀 녹이고 와서 하려무나. 그러다 몸살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러니?” 딸의 안타까운 모습에 금봉이 아버지는 딸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은 건넸지만 금봉이는 괜찮다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네가 그렇게 밤낮으로 지성을 드리는데 천지신명님께서 모르는 체 하시겠니? 조금만하고 들어가거라. 그러다 네가 탈이 날까 걱정이다.”

 “아버님, 전 괜찮아요.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하다 들어갈게요.”

 “얘, 금봉아, 이제 작작 좀 해라.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면 네가 아무리 지성을 안 드려도 박달 도령이 과거에 떡하니 붙을 것이고, 박도령이 공부를 게을리 하였다면 네가 아무리 지성을 드린다고 합격하겠니? 다 천우신조야. 그만하면 되었으니 이제 지성을 그만두렴. 네 몸이 축나면서 까지 할게 무에야?”

금봉이 어머니는 제 몸도 돌보지 않고 자성을 드리는 딸의 행동이 못 마땅했다.

 어쩌다 발길이 닿은 사내의 입신양명을 위하여 저리 공을 들이는 딸이 한편으로는 밉기도 하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단지 며칠 묵은 사내가 정말로 과거에 급제하면 찾아올지도 의문이 들었지만, 만약 과거에 급제하면 자신의 딸에게 그 광영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산골에서 땅만 파먹고 사는 농사꾼의 여식에게는 너무나 과분하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어머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금봉이는 어머니의 말에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딸은 인연을 쌓은 박달 도령을 위하여 지성을 드리는데 따뜻한  도움의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할망정 야박한 말을 하는 어머니가 미웠다.

 ‘아니, 저 얘가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기에 저리도 극성이란 말인가? 내 몸에서 나온 자식이지만 알 수가 없으니 원.’

금봉이 어머니는 딸의 서운해 하는 말에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속으로 혀를 찼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박씨 가문에 광영을 주시옵고, 소녀에게도 복을 주소서. 이렇게 빌고 비나이다.”

금봉이 매일 밤,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님에게 지성을 드린다는 소문이 금방 마을에 쫙 퍼졌다. 어떤 사람들은 금봉이 천지신명에게 지성을 드린다는 현장을 보기 위하여 몰래 금봉이 집 담장에 접근하여 훔쳐보기도 하였다.

 또 어떤 여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살며시 금봉이네 집 담장에 접근하여 숨소리를 죽여 가며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느라 극성을 떨기도 하였다.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동네 참새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금봉이 며칠간 묵었던 박달 도령과 장래를 약속한 사이라는 둥 이미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둥 별의별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금봉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딸아이의 소문에 대하여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자 소문은 사실로 굳어졌다.

 “개똥이네, 소문들었수?” 

“응? 뭔 소문?”

 “이런 이렇게, 개똥어멈은 벌말 사람 맞수?”

 “먼데 그러우? 소똥어멈?”

 “얼마 전 금봉이네 집에 웬 낯선 남자가 며칠간 있었잖수?”

 “응, 그랬었다고 들었어. 나는 보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잘생기고 당당하게 생긴 총각이라고 들었는데. 그런데 그게 뭐 어찌되었다는 거유?”

 “그때 금봉이와 그 사내가 매일 밤늦게 물레방앗간을 들락거렸다네.”

 “응? 그래? 왜 허름한 물레방앗간엘 들락거려?”

 “왜라니? 젊은 남녀가 밤마다 물레방앗간을 드나들었으면 뻔할 뻔자 아니겠어?”

 “뭐가 뻔 하다는 거여?”

 “어이쿠, 이런 맹추 같은 여편네.”

 “소똥어멈, 내가 좀 알아듣게 이야기 해봐유.”

 “뜨거운 피가 펄펄 끓는 남녀가 밤마다 은밀히 물레방앗간을 찾았다는 게 무얼 의미하겠수?”

 “호호 호호호......”

두 여인은 빨래터에 앉아 배꼽을 잡고 깔깔거렸다. 여인들의 웃음소리에 다른 여인들조차 영문도 모른 채 괜히 비실비실 웃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요상한 소문이 마을에 도는데 그것도 정말인가 봐.”

 “아니, 그건 또 뭔소리유?”

 “금봉이가 요즘 이틀이 멀다하고 이등령을 오르내린데.”

 “그것참, 점점 알 수 없는 이야기 일세. 이 추운 날에 처녀가 혼자서 저 높은 이등령을 왜 오르내려?”

 “어이쿠, 이 밥통 같은 여편네. 저 험한 이등령에 올라가야 임 계신 한양 쪽을 바라볼 거 아녀?”

 “금봉이가 그 도령이 떠나는 날 산척가까이 까지 따라가서 배웅하고 왔다잖아. 두고 봐. 조만간 희한한 일이 일어날 테니.”

 “아니, 소똥어멈, 그건 또 뭔 소리유?”

 “아니유. 내 혼자한 소리구먼.” 동네 아낙 두 명만 모이면 온통 금봉이 이야기뿐이었다. 소문의 진원지는 바로 동네 총각들 입이었다.

 박달이 벌말에 며칠 묵는 동안 금봉이와 관계를 질투하던 벌말 총각들의 입에서 금봉이를 헐뜯는 말들을 쏟아 냈다.

물론 금봉이와 박달 도령이 은밀히 물레방앗간에서 사랑의 밀어를 엿들은 사내의 입이 모든 소문의 근원이었다.

 “야, 갑돌아, 너는 배도 안 아프니? 금봉이가 그 사내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며? 혹시 배꼽도 맞춰본거 아녀?”

개똥이가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려 있던 갑돌이 심기를 건드렸다. 평소에도 갑돌이와 개똥이는 사소한 일로 자주 다퉜다. 개똥이가 금봉이의 소식을 마치 굉장한 일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