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에 기생하는 들병이나 술파는 구미호 같은 여인에게 혹하여 며칠 만에 노잣돈을 전부 탕진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자도 있었고, 묘령의 여인에게 첫눈에 반하여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경을 치거나 혼쭐이나 망신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 온 과거준비생들 중 한양의 화려한 외관과 어여쁜 양반 댁 처자들에게 눈이 멀어 엉뚱한 공상을 하는 축들도 꽤 있었다.

양반가 처녀들의 꽁무니를 따라가다 하인들에게 잡혀 주먹세례를 받거나 얻어맞는 축들도 있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과거 준비생들로 한양은 어수선 하였다.

  孔子曰(공자 왈) 操則存(조즉존)하고 舍則亡(사즉망)하야 出入無時(출입무시)하야 莫知其鄕(막지기향)은 惟心之謂與(유심지위여)인저.
  공자가라사대, 잡으면 남아 있고 놓으면 없어진다. 때 없이 드나들어 정처를 알 수 없는 것이란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有天爵者(유천작자)하며 有人爵者(유인작자)하니 仁義忠信樂善不倦(인의충신낙선불권)은 此天爵也(차천작야)이라.
  천작은 하늘이 준 벼슬이고 인작은 사람이 준 벼슬이니 인의충신과 같이 선을 즐겨서 게으르지 않는 것이 천작이다.     

  박달 도령은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과거준비에 전념하였다.

밤과 낮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책을 읽고 암송하며 과거에 반드시 합격하여 보란 듯 금봉이 에게 달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박달 도령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에 젊고 요염한 주모는 자주 박달 도령의 방을 기웃거렸다. 과거를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외모도 준수하고 행동도 예의바른 박달 도령을 젊은 주모는 눈 여겨 보고 있었다.

 하루 세끼 식사도 다른 방을 쓰는 사람들에 비하여 훨씬 신경을 쓰며 은근히 헌헌장부인 박달 도령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여보시게, 뭘 그리 열심히 하시나? 이리와 한 잔하시게나. 너무 공부에만 신경을 쓰면 건강을 해칠 수 있어. 이리와 우리하고 한 잔 하면서 천천히 공부하세. 세월이 뭐 좀 먹나?”

같은 방을 쓰는 전라도에서 올라 온 유생이 초저녁부터 술타령을 하며 박달 도령에게 자꾸 술을 권하였지만 박달 도령은 사양하였다. 그러나 계속 사양하는 것도 실례가 될 것 같아 한 잔 받아 마셨다.

 “거 보아하니 경상도 지방에서 올라오신 도령 같은데 쉬엄쉬엄 공부하시구려. 그러다 몸이 모두 축나겠시다. 아침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니 내 걱정이 돼서 그러오. 천천히 쉬면서 하시구려.”

사내는 박달 도령을 은근히 깔보는 말투였다.

 “박도령은 이번이 처음인가 봅니다.”

강원도에서 온 사람이 박달 도령에게 물었다.
 “네에, 첫 시험입니다. 형씨께서는 처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요? 이번이 다섯 번째라오. 하하하하......”

강원도 사내가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네 번째 도전이오. 허허허허......”

이번에는 묻지도 않았는데 전라도 사내가 탁주잔을 비우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박도령은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준수하며 또 예의도 바르니 여인네 가슴에 불 좀 지폈겠구려. 허허허허......”

박달 도령은 여인네란 말에 금봉이  화사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지 나에게도 여인이 있지. 아주 아리따운 여인이지. 지금 이 시각에도 나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천지신명에게 지극정성으로 지성(至誠)을 드리고 있을 테지. 꼭 장원급제해서 금봉이의 정성에 답해야 하는데......’

 갑자기 금봉이 생각이 나자 박달도령은 마음이 무거웠다. 생전 처음 보는 자신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는 금봉이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아아, 무슨 일이 있어도 과거에 장원이 아니라도 좋으니 합격은 꼭해야 하는데......’

박달 도령이 금봉이 생각에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도령, 뭐하우? 어서 한 잔하지 않고서?”

 “아, 네네.”

 “이 보우 도령?”

나이 많은 강원도 사내가 박달 도령에게 술을 다시 한잔 따라 주면서 박달 도령의 수심에 찬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고향에 여인을 두고 오셨나보군요? 혹시, 뱃속에 아이라도 만들어 놓고 온건 아니우?”

 “네에?”

 “하하 하하하......., 내말이 맞는가 보우? 그럼, 안심하시우. 사내는 먼 길 떠날 때 여자들에게 일을 만들어 줘야해. 일은 . 암 그렇고말고.”

 “여자들은 잡념이 없어야 해. 남정네들이 객지에 나가있는 동안 엉뚱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래서 먼 길 떠나는 남정네들은 떠나기 전에 꼭 씨를 뿌려놓지.”

 “형씨,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어? 박도령 내말이 무슨 뜻인지 정말 모른단 말이오?”

박달 도령은 강원도에서 온 사내의 말을 듣고 다시 금봉이를 생각하였다.

 ‘뱃속에 아이를 만들다?’

박달 도령은 술 한 잔 마시자 처음 금봉이를 만난 날 밤, 벌말 물레방앗간에서 금봉이와 나눈 사랑을 기억해 냈다.

 ‘아아, 그때가 참으로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마치 꿈을 꾼 것처럼 황홀하고 너무 기분이 좋았었어.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리고 밤에도......’

박달 도령은 여인과 사랑하는 법만 알았지 남녀가 자주 사랑을 나누다 보면 아이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아기는 정식으로 혼인을 올리고 난 뒤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삼신할머니가 부부가 몰래 자는 방에 갖다 놓는 줄 알고 있었다.

서당에서 공부만 하던 박달 도령에게는 여인의 오묘하고 복잡한 신체적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잘 몰랐다.

 ‘설마 나와 금봉이가 몇 번 나눈 사랑에 아기가 생기려고?’

 “형씨, 하나만 물어볼게요.”

 “응? 물어보시구려.”

두 사내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박달 도령을 바라보았다.
 “아녀자들 뱃속에 아기가 생기는 것은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야 생기는 거 아닌가요? 혼인도 하지 않은 처녀에게는 절대로 아기가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응? 아하하 하하하하......”

 “허허허 허허허허......”

박달 도령의 순진한 말에 두 사내는 갑자기 배를 움켜잡고 벌렁 누워 박장대소(拍掌大笑)하였다.

 ‘거참 이상한 사람들이네. 내말이 뭐 잘못되었나? 웃긴 왜 웃는단 말인가?’

 “맞아, 맞아. 삼신할미가 점지하지 않으면 절대로 아기가 생기지 않지. 아하, 하하하…….”

전라도 사나이가 다시 포복절도(抱腹絶倒)하며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아니, 박도령 고향에 있는 처녀에게 씨라도 뿌리고 온 거여?”

 “네에? 씨라뇨?”

 ‘이런 바보 같은 녀석. 공부만 하느라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강원도 사나이는 박달 도령의 순진한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뽀얗고 보들보들하고 따뜻하며 촉촉한 밭에 걸쭉한 씨를 안 뿌렸느냐고?”

 ‘아니,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여?’

 “하하 하하하......” 갑

자기 박달 도령은 바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전 도무지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그만 책을 볼 테니 두 분은 계속 말씀 나누세요.”

박달 도령이 자리로 돌아와 앉아 책을 폈다.

 “박도령, 한 잔 더하시오.”

 “아닙니다. 명심보감을 읽어보려고요. 시험이 다가오니 자꾸 암기하고 있던 내용도 생각이 안 나서 큰일입니다.”

 “그러지 말고 한잔 더 하시구려.”

 “아닙니다.”

박달 도령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책을 펴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하자 두 사나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박달 도령을 곁눈질하며 자기들 끼리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녀석이 어수룩한 척 하지만 분명 고향의 처자에게 씨를 뿌려놓고 온 게 분명해.”

 “맞아. 아까 눈빛을 보니 근심이 꽤 많은 눈치였어.”

 “저런 멀대같은 녀석하고는......”

두 사람은 자기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을 마셔댔다.

  子曰(자왈) 聰明思睿(총명사예)도 守之以愚(수지이우)하고 功被天下  (공피천하)라도 守之以讓(수지이양)하고 勇力振世(용력진세)라도  守之以怯(수지이겁)하고 富有四海(부유사해)라도 守之以謙(수지이겸)이니라
  공자가라사대, 총명하고 생각이 뛰어나도 어리석은 체 하여야 하고, 공이 천하를 덮을 만하더라도 겸양하여야 하고, 용맹이 세상에 떨칠지라도 늘 조심하여야 하고, 부유한 것이 사해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겸손하여야 하느니라.

 ‘염병할, 저놈이 우리보고 들으란 소리 같네.’ 강원도에서 온 사내가 술 한 잔을 비우더니 중얼거렸다.

 “우리같이 뒷줄이 없는 사람들은 백날 공부해야 별수 없더구먼. 빌어먹을 놈의 세상 같으니. 이미 과거의 장원급제는 다 정해진 일인데 공부는 해서 무엇 한단 말이여. 이보시게, 우리 오늘은 그동안 공부하느라 머리도 아프고 하니 술이나 질탕하니 마시자고."

 전라도에서 온 사내가 강원도 사내에게 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하자 강원도 사나이도 맞장구 쳤다.

“동감일세. 이미 장원급제는 영의정이나 좌의정 아니면 우의정 자제나 친인척들에게 배정되었을 텐데 똥빠지게 공부해 보았자지. 빌어먹을 놈들같으니라구. 험-. 험-. 그리고 공부도 쉬엄쉬엄 해야 하지. 저러다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이 한양바닥에서 병이라도 덜컥 나는 날에는 도루아미타불이지. 암, 그렇고말고.”

전라도에서 온 사내가 큰 소리로 박달 도령을 흘낏 박달 도령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말하였다.

 “난 한양 올라오기 전에 우리 동네 윤초시댁 셋째를 건드려 놨는데 걱정이 된 다우.”

강원도에서 온 사내가 은근히 자랑하였다.

 “난, 우리 아버지가 예뻐하는 우리 집 종년을 건드려 놨는데 혹시 고년이 아버지에게 고자질했을까봐 걱정이라네. 흐흐 흐흐흐......”

전라도 올라 온 사내가 자랑스러운 듯 말하였다.

 ‘아아, 저 사람들이 한양까지 와서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는구나. 그러나 나는 금봉이와 고향의 어머님을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해야지. 이번 과거에 꼭 합격해야 해.’

박달은 두 사내의 음탕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말이야. 고년이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길은 잘 닦아 놨는지. 손만 대면 자지러지지 뭐야? 아마 우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얼굴을 하실까? 이히히히......”

전라도 사내는 방바닥을 쳐가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윤 초시 셋째 딸도 어찌나 밝히는지,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것이 동네 사내들에게 꼬리를 치고 다닌 것 같어. 어쩐지 처음이 아닌 것 같더라고. 젖퉁이가 빵빵하고 엉덩이 돌리는 거며, 나하고 그일 치룰 때 용쓰는 거 보니까 아주 능수능란하지 뭐야. 사내 한두 명은 성에도 차지 않을 거야 아마. 아하하 하하하하......”

박달 도령은 귀를 틀어막았다.  

 ‘아아, 이러다 저 사람들 때문에 과거 준비에 차질이 생길 것 같은데. 어쩌나 이 주막에서 독방을 쓸 수도 없으니......’

  利人之言(이인지언) 煖如綿絮(난여면서)하고 傷人之語(상인지어)는 利如荊棘(이여형극)하야 一言半句(일언반구) 重値千金(중치천금) 이요 一語傷人(일언상인)에 痛如刀割(통여도할)이니라.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 가시 같아서 한마다 말은 무겁기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 말이 사람을 중상함은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으니라.
 
 박달 도령은 두 사내의 음담패설에 맞서 일부러 큰소리로 글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