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박도령 과거 준비는 많이 하시었소?”

 “많이라뇨? 겨우 천자문과 소학이나 사서삼경 제목만 읽어본 걸요.”

 “허허허허허허......, 너무 겸손한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지요.”

 “선달님은요?”

 “나 역시 공맹(孔孟)과 잠시 친분을 나눴을 뿐이라오. 허허허허허......”

김 선달의 말투에서 과거를 치루기 위하여 한양에 가는 것이 아니라 풍류를 즐기러 가는 듯한 인상을 읽을 수 있었다.

배는 아주 천천히 북서 방향을 향해 유유히 흘러갔지만 박달은 벌말에서 여러 날을 머물러 마음이 조급했다.

그러나 배위에서 뛸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하는 수없이 사공의 완력과 바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때가 지나서 출발한 배는 속도가 너무 느린 듯 했다. 이런 속도로 가다가 어느 천 년에 한양에 도착하나하는 조급함이 일었다.

 ‘괜히 배를 탔나? 충주, 장호원, 이천, 용인을 경유하여 걸어갔더라면 더 빠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스승님이 산척이나 충주쯤에서 배를 타면 걷는 것 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고 하셨어. 에라, 모르겠다. 이미 뱃삯도 주었으니 되돌려 받을 수도 없고 누워서 잠이나 자자.’

박달 도령이 볏가마니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였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와 폐부 속까지 시원하게 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쳥산)애 살어리랏다 /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나이가 지긋한 뱃사공이 부르는 노랫가락에 박달 도령은 눈을 떴다.

구성진 그의 노랫소리가 타향의 나그네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김청은 뱃머리에 앉아 젊은 사공과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이 웃고 떠드는 것으로 보아 꽤 친분이 있은 것 같았다.

김청이 박달 도령과 눈이 마주치자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아니라고 박달 도령이 손사래를 쳐도 김청은 계속해서 박달 도령을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이렇게 산천경계가 빼어난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눈앞에 보면서 어찌 술 한 잔이 생각나지 않겠소?”

김청은 자신이 풍류객이라도 된 것처럼 연신 술잔을 기울이며 옛시조를 읊기도 하고 제 흥에 겨워 노래도 부르며 신바람이 난 듯 했다.

 “자, 박달 도령도 한잔 하시오.”

김청은 뱃사공들이 힘들 노동을 하면서 목을 축이기 위하여 준비해 온 탁주를 마치 자신의 것 인양 막사발에 한잔 기득 부어 박달 도령에게 건넸다.

 “아, 아닙니다. 난, 뱃멀미를 해서요.”

 “원, 사람하고는......”

 “선달님, 정말입니다. 아까부터 뱃멀미가 나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박달 도령은 짐짓 머리가 아픈 척 한 손을 이마에 갔다댔다.

 “허허, 젊은 도령이 벌써 뱃멀미를 하면 안 되는데. 아직도 한양에 가려면 며칠이 걸릴 텐데.” 김

청은 술 잔을 들면서 중얼거렸다. 배는 미풍에 순항하며 서쪽으로 나아 갔다.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여유도 없이 곧 해는 멀리 서천으로 기울고 있었다. 석양을 받은 강에 까치놀이 눈이 부시게 빛났다.

 “배는 잠시 후 덕은에 도착 합니다. 날도 저물고 하여 그곳에서 하루 묵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거요. 밤에는 위험하고 이곳 물살이 급해서 운항을 하지 않습니다. 밤에는 포장을 쳐드릴 겁니다. 이슬이나 서리 같은 것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이오. 만약 날이 춥거나 비가 내릴 경우 배 안으로 들어가 쉬어도 좋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사공이 배에 탄 손님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배가 덕은에 도착하자 금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김 선달님, 저녁은 어디서 해결하고 잠은 어디서 자나요?”

 “허허, 박도령 처음이라 잘 모르는가본데? 잠은 배에서 자고 저녁은 가져 온 주먹밥 있으면 배에서 드시고, 준비가 안 되었다면 덕은 이라는 마을에 가서 사 드시면 될 거요.”

뱃길을 훤히 꿰뚫고 있는 김청은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내리면서 박달 도령에게 내려오라고 손짓하였다.

“아닙니다. 전 배에서 주먹밥으로 요기를 하려고요.”

 “허허, 저기 술집이 있는데 내가 한잔 살 테니 가십시다.”

 “아닙니다. 다녀오십시오.”

박달 도령은 간신히 김청의 제의를 거절하고 배에서 주먹밥을 먹었다.

금봉이와 헤어진 뒤 어제 저녁 늦게 민가에서 하룻밤을 유숙하면서 저녁을 얻어먹었다.

오늘 오후 목계 나루터에 도착한 박달 도령은 주막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으로 해결하였다.

김 선달을 따라가 술 한 잔 하면서 객지에서의 피곤을 풀고 싶었지만 처음 본 사내에게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놓고 싶지 않았다.

또한 한양가서 과거를 무사히 보고 고향으로 돌아 갈 때 까지 많은 노잣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흥청망청 돈을 쓸 수도 없었다.

노모가 어렵게 마련해준 돈이었다. 하루가 지났어도 주먹밥과 도토리묵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금봉이, 고맙소. 그대 덕분에 잠시지만 내가 호강을 했습니다.

박달 도령은 담백하면서 달착지근한 도토리묵을 맛보면서 금봉이를 생각하였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배에 누워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별들이 하얗게 눈처럼 떨어질 것 같았다.

김 선달과 두어 명의 사내들이 술이 만취가 되어 늦게 배에 올랐다. 박달은 배 뒷전에 앉아 있다가 김 선달 일행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얼른 아래로 내려가 잠든 척 눈을 감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강 위를 배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오후가 되자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사공들이 얼른 돛대를 내리고 배에 실은 물건들이 젖지 않도록 유지(油脂)먹은 두꺼운 것으로 덮어씌우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한바탕 늦가을 폭우가 지나가더니 이내 잠잠해 지면서 하늘이 맑게 갰다.

 “염병, 날씨하곤. 장마도 다 지나갔고 곧 첫서리도 내릴 텐데 무슨 천둥번개람.”

김 선달이 투덜거리며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해댔다. 강폭이 넓어지면서 배의 운항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렸다. 사공들이 돛대를 높이 올리고 배 좌우에서 긴 노를 담그고 저었지만 무거운 배는 쉽게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러다 배에서 시간 다 보내는 거 아녀?’

박달 도령은 도 다시 조급증이 일었다.

지금쯤 한양에 도착해 어느 주막에 짐을 풀고 미진한 공부에 온 힘을 쏟아야 했다.

배가 빨리 가지 못하자 박달 도령이 나이 들어 보이는 사공에게 항의를 해보았지만 역풍이 불어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나절 북서풍과 싸우던 배는 바람이 잠잠해지자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자 사방이 금방 어둠에 휩싸였다.

 “자, 미안합니다. 오늘은 저기 불빛이 보이는 흥원창이 있는 흥호(興湖)에서 하룻밤 묵고 떠날 것이오. 강물이 많이 불어서 밤 운항은 위험합니다. 저기에는 주막도 있고 숙사(宿舍), 난전(亂廛), 잡화상도 있습니다. 주막에는 예쁜 색시들도 있으니 목이 컬컬한 분은 막걸리 한잔 하시고 오시구려. 배는 내일아침 해가 뜨면 바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사공의 이야기가 끝나자 삼심 여명이나 되는 손님들은 우르르 배에서 나와 흥호로 몰려갔다.

 배에 혼자 남겨 된 박달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려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오기로 하였다. 김 선달은 박달 도령에게 같이 가자는 말도 없이 어제 함께 술을 마신 일행들과 나가버렸다.

낯선 고장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박달 도령은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생천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창고며 환하게 불을 켜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난전과 잡화상 그리고 주막과 객사(客舍)는 이곳이 마치 색주가들이 모여 있는 곳 같기도 했다.

 “아이고, 오라버니 어서 오셔요. 호호호호......”

박달 도령은 예쁘게 치장한 한 여인이 잡아끄는 대로 따라갔다.

주막이었다. 이곳에 주막이 두세 곳이 있는 듯 한데 그중에 규모가 크고 깨끗해 보이는 주막이었다.

여인은 방으로 박달을 안내 하였다.

방에는 이미 서너 패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밥을 먹으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박달 도령이 혼자 들어오자 이상한 시선으로 박달 도령을 쏘아 보았다. 그중 두 패는 함께 목계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온 축들이었다.

그런데 두 서너 패들은 들병이로 보이는 여인들을 옆에 앉혀놓고 술을 마시면서 농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사내들이 여인의 옆구리며 젖가슴, 풍덕한 엉덩이를 만져도 여인들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주모, 여기 국밥 한 그릇 말아오구려.”

 “훤칠하게 생긴 도령님이시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쁜 여인이 나가자 곧 다른 여인이 소반에 국밥과 호리병이 차려져 나왔다.

 “아니, 이보시오. 이건 뭐요?”

 “이건, 우리 주모께서 헌헌장부님이 오셨다고 인심 쓰는 거니 개의치 마시고 드세요. 호호호호......., 정말이지 잘 생기셨다.”

 “아니오. 난 그냥 가져가시오. 난 국밥 한 그릇이면 됩니다.”

 “아이, 도령님도. 이 술은 주모 언니가 그냥 드리는 거라니까요.”

여인은 박달 도령에게 눈웃음을 살살치면서 나가 버렸다.

 ‘아니, 이거 나중에 돈 받는 거 아녀? 내가 잘 못 들어왔나? 배에서 그냥 먹다 남은 주먹밥이나 먹고 있을걸......’

박달 도령은 불안해하면서 옆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행색으로 보아 뱃사람과 뱃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같았다.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들자 금방 방안은 손님들로 꽉 차버렸다.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국밥을 먹고 있는 박달 도령은 주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호리병 안에 든 술을 마시지 않고 그냥 간다는 것은 나그네에 대한 주인의 친절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에 이르자 박달 도령은 자작하면서 시름을 달랬다. 일손이 부족한지 머슴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도 이리저리 손님사이를 누비며 술병과 술잔, 안주를 나르고 있었다. 우연히 박달 도령이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앗, 대길이 형님이......”

 “어, 너, 너 박달이 아니니?”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박달 도령보다 다섯 살 위인 동네 형 대길은 한때 촉망받는 과거준비생이었다. 마을에서는 스승보다 더 학식이 뛰어나다고 평이 자자했던 인물이었다.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다고 마을을 떠난 지 5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 마을에서 궁금해 하고 있던 바로 그 대길이 형님이 초라한 머슴의 차림새로 박달 도령의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