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성 범    전 제천교육장, 세명대 초빙교수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조석으로 소매깃을 스친다. 
그러고 보니 숨가쁘게 달려온 금년 한해도 어느덧 끝자락을 향하여 성큼 성큼 다가가고 있다. 책상위에 놓여있는 12월 달력이 왠지 모르게 애처롭게만 보인다. 아마도 더 이상 넘길 달력이 없다는 허전함이 서려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늘 이맘때가 되어 돌이켜보면 지나온 삶의 여정마다 참으로 숱한 애환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때로는 기뻐서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 어떨 줄 몰랐던 일, 그런가하면 뜻하지 않는 일로 눈가에 이슬을 닦으며 한없이 가슴 아파했던 일, 정말 매듭매듭마다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도 뒤돌아볼 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의 순간순간들, 한 달을 새롭게 시작 할 때마다 그달에 해야 할 일을 정성껏 메모한 흔적이 지금의 삶을 있게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지만 아쉬움으로 가슴을 시리게 하기도 한다. 하기야 아쉬움이 있어야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보기도 한다. 
이제는 한해를 곱게 정리해야 할 시간들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아름다운 갈무리를 해야 할 시기이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옛날 짚신장수 아버지와 이들이 있었는데 기술이 훌륭한 아버지가 만든 짚신은 잘 팔리고 그 기술을 전수 받은 아들의 짚신은 잘 안 팔렸다. 그냥 보기에는 전혀 차이가 안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평소에 그 이유를 아버지께 여쭈어 보면 ‘네 스스로 깨달아 보라’고만 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려고 할 때 아들이 아버지께 그 이유를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른 설명 없이 ‘털털’이라는 말만 하시고는 세상을 뜨셨다. 
그 후 아들은 아버지의 짚신과 자기의 짚신을 비교하면서 다시금 아버지가 말씀하신 ‘털털’을 생각하면서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한 결과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아 낼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만드신 짚신은 잔털까지 곱게 마무리 되어 완벽할 정도의 짚신이었고 저기의 것은 마지막 손질이 깔끔하지 않은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아들은 아버지처럼 끝마무리를 잘한 짚신을 만들어 훗날에 그 장터에서 제일가는 짚신 장수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같은 재료와 기술로 만든 짚신이라도 마무리의 정도에 따라 상품의 가치와 값의 차이가 나듯이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하나하나 꼼꼼히 짚고 넘어가는 습관이 매우 필요하다. 
즉 한 과정을 마무리 할 때에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간의 과정을 다시 되짚어 보고 끝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다시금 생각해 본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글의 성패는 결말에 달려있고 바둑의 성패는 끝내기에 달려있으며 사람의 평가는 임종을 보아야 일 수 있다고 말이다. 
모두 끝마무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끝맺음이 없는 새로운 시작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 시작이 아무리 좋아도 끝마무리의 매듭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는 다면 곧 풀어지고 마는 법이다. 
돌이켜보면 어제와 같이 시작한 금년 한해도 어느덧 갈무리해야 하는 시기에 와 있게 되었다. 지나고 보면 참으로 빠른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한해의 석양에 뒤안길에서 우리에게는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또 다른 희망찬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내가 머물던 이 자리를 최선을 다해서 아름답게 갈무리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향기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