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로 든 딸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자 금봉이 아버지가 사랑채 앞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어쩔 줄 몰랐다. 할 수없이 금봉이 아버지는 헛기침을 해댔다.

 “서방님, 어서 준비하고 나오셔요. 아버지께서 밖에 계신가 봐요.”

금봉이 두 눈이 빨갛게 변해 사랑채에서 나오자 금봉이 아버지는 딸애의 촉촉해진 눈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아아, 저 여리디 여린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견디어 낼까?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이러다 생떼 같은 딸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금봉이 아버지는 멍하니 운무 속에 모습을 감춘 이등령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오. 박도령, 꼭, 꼭 장원급제 하시고 고향가시는 길에 꼭 한번 들려주시구려.”

 “꼭 그리하겠습니다. 두 분 안녕히 계십시오.”

이른 아침 마당에 네 사람이 석별을 나누고 있었다.

만남은 곧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별은 또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겠는지. 비록 닷새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박달 도령은 정성을 다해 자신을 보살펴 준 금봉이 부모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고, 비록 부부는 아니지만 부부 이상으로 정이 든 박달 도령과 금봉이는 헤어지는 것이 가슴 아팠다.

 “금봉 낭자, 그 동안 정말로 고마웠어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박달 도령이 금봉이에게 다가가 작별의 인사를 건네자 금봉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옆에서 부모가 지켜보지 않는다면 박달 도령의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었다. 박달도령은 말없이 흘쩍거리는 금봉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금봉 낭자, 얼른 가서 부엌칼이나 낫 있으면 가져와요.”

박달이 분이 퉁퉁 불어 있는 금봉이에게 이상한 주문을 하자 금봉이와 금봉이 부모는 의아해 했다.

 “도, 도령님, 칼하고 낫은 어디에 쓰시게요?”

 “가져와 보면 압니다.”

금봉이 아버지가 외양간 벽에 꽂혀있던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을 가져와 박달 도령에게 건넸다.

 “자, 이건은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정표랍니다.”

박달은 옷고름 낫으로 잘라내어 편지와 함께 금봉이에게 주었다.

 “도령님......”

금봉이는 그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훌쩍거렸다.

 “만약 내가 보고 싶으면 이 편지와 옷고름을 꺼내봐요. 나로 생각하고요.”

박달 도령이 하얀 옷고름을 건네자 금봉이는 받아들고 흐느꼈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도령님, 이거......”

이번에는 금봉이 낫을 들더니 물항라 저고리에서 빨간 옷고름 반을 잘라 박달 도령에게 건네주고 얼굴을 푹 숙였다. 가까이서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던 금봉이 아버지는 헛기침을 해댔고, 금봉이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 저 애가......’

 “저도 이 옷고름을 드릴 테니 제가 보고 싶을 때 마다 머리맡에 두고 보세요. 저도 도령님의 옷고름을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흑-.”

 “금봉 낭자.”

박달 도령은 금봉이가 건넨 물항라 저고리의 빨간 옷고름을 들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보시게, 박달도령, 이제 그만 길을 떠나야 할 것 같으이. 곧 해가 뜰 것 같은데......”

 “예, 어르신 알겠습니다.”

 “금봉 낭자, 잘 있어요.”

 “박달 도령님, 으흐흐 흐흐......”

 “울지 말아요. 곧 다시 보게 될 터인데......”

금봉이 곁에 부모가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잘 있어요. 내 장원급제하면 바람같이 달려와 제일 먼저 그대에게 알리겠소. 만약 좀 늦더라도 절대로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나를 기다려 줘요. 알겠지요?”

 “네에. 부디, 부디 몸조심하시어요.”

금봉이는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박달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도령님, 이거......”

금봉이 하얀 보자기에 싼 것을 박달 도령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이요?”  

“가시다가 시장하시면 드시라고 도토리묵하고 주먹밥을 준비했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한양 가시는 길에 많이 시장하실 거예요.”

 “도령님, 괴나리봇짐에 매다세요.”

금봉이 건넨 주먹밥과 도토리묵을 받아 든 박달 도령은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과거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벌말에서 금봉이와 알콩달콩 살면서 한 세월 보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금봉 낭자, 고맙소. 내 그대의 정성에 꼭 보답하리다.”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두 분, 안녕히 계십시오.”

 “잘 가시게.”

 금봉이 아버지는 콧등이 시큰 하자 코를 팽하고 풀었다.

 “박도령님 -.”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미 금봉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차마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금봉이 아버지가 큰 기침을 서너 번 하고 난 뒤에야 금봉이와 박달 도령은 떨어졌다.

 “잘 가시게. 꼭 장원급제 하시게.”

 ‘서방님, 꼭, 꼭 장원급제하세요. 저는 밤낮으로 서방님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빌겠나이다.’

금봉은 떠나가는 박달을 뒷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얘야, 뭐하니. 박달 도령을 동구 밖까지 배웅하지 않고?”

 “아버지......”

금봉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래. 어서 다녀오렴.”

금봉이 아버지는 금봉이에게 ‘어서 따라가지 않고 뭐하느냐?’는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산안개가 자욱한 마을길에 박달 도령이 앞서서 걷고 두 서너 발짝 뒤로 금봉이 흐느끼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뒤 따랐다. 이른 아침이지만 추수철이라 동네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혹시 마을 사람들이 볼까봐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요. 아버님, 어머님이 걱정하실 텐데.......”

 “서방님, 흐흐흐흐흐.......”

금봉이는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제대로 박달 도령을 바라보지 못했다.

 “바보같이, 울기는......”

 “서방님, 다시 오실 거죠? 꼭 소녀를 다시 찾아오실 거죠? 꼭”

 “바보, 그럼 다시 오지 않고. 내 과거에 합격하면 제일 먼저 그대에게 달려온 다고 했잖소. 넉넉잡고 삼 개월만 기다려주오. 꼭 그대를 보러 다시 오리다. 내 천지신명님과 하늘을 두고 맹세하오. 꼭 다시 올 테니 기다려주오.”

박달 도령은 금봉이 손을 잡더니 엄지손가락을 맞추고 금봉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금봉이 잠시 화사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살포시 미소 짓는 금봉이의 모습에 박달 도령은 그만 울컥하며 눈물을 보일 뻔하였다.

 “정말이지요? 저는 오늘부터 서방님을 다시 뵐 때까지 편히 잠도 자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천지신명님께 서방님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기도만 올릴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꼭 , 꼭 장원급제하셔야 합니다. 꼭이요.”

 “안돼요. 그러면 안돼요. 내 걱정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자야 돼요. 그리고 건강하게 지내야 다시 나를 볼 때 나도 기분이 좋지요. 내 걱정 너무 하지 말아요. 그대와 이곳 벌말에서 보낸 닷새가 마치 백년을 보낸 것 같소. 금봉이, 절대로 안정을 취하며 건강하게 지내야 하오. 내 꼭 장원급제하여 벌말을 다시 찾을 테니 잘 있어야하오.”

 박달 도령은 동구 밖 장승이 서있는 길에서 금봉이를 꼭 안아주었다.

 “잘 있어요. 내 꼭 장원급제하면 바람처럼 달려와 그대를 은애할거요. 그때 까지 몸성히 잘 있으시오. 내가 만약 약간 늦더라도 다른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주오. 꼭, 꼭 이곳 벌말을 다시 찾아 올 것이오.”

박달 도령의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금봉이는 박달의 품에 꼭 안기며 흐느꼈다.

 “서방님, 으흐흐 흐흐흐.......“

 “금봉이, 그럼, 잘 있으시오.”

박달 도령이 앞서서 걸으려고 하자 금봉이 박달 도령을 따라나섰다.

 “서방님, 저도 따라가겠어요.”

 금봉이 서있다 말고 박달 도령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금봉이의 모습에 박달 도령은 너무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아니 되오. 난 과거를 보러가는 몸이오. 그대를 데리고 한양에 갈 수는 없소.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아니 되오. 어서 돌아가요. 이러면 한양가는 나의 발길이 무겁소.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한양으로 갈 수 있도록 해줘야하오. 금봉이, 어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요.”

박달 도령은 금봉이 손을 잡고 금봉이가 집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하였으나 금봉이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거릴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