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상고 행정실장 허세강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이름을 남기고 가신분이 한두분이 아니지만 이분 또한 크게 이름을 남기셨기에 비록 떠나신지 15년이 지났지만 다시한번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여기 한 여인의 삶을 적어 봅니다.

이양남 할머니는 1906년 6월 28일 제천시 화산동에서 전주이씨가문의 세자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마음씨 곱고 착한 이양남은 유년시절을 제천에서 보내며 성장해 19세의 나이에 강원도 원주시 문막면의 청풍김씨 가문으로 출가를 합니다.

이때부터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일군 사랑의 보금자리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6.25동란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양남은 큰 아들은 학도병으로 둘째는 경찰공무원으로 구국의 일선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장열한 전사로 순국, 부모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연이어 날아든 비보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이 계속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이성을 잃고 홀연히 집을 나가게 됩니다.

중년에 이른 이양남은 이제 죽기보다 힘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배운 것이 없는 당시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날품과 삯바느질이 전부였습니다.

온갖 고난과 유혹을 물리치며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일하며 근검절약하기를 20여년 마침내 그녀는 제천시 신백동에 임야 등 6000여 평의 땅을 구입해 자신의 재산으로 만듭니다.

이 땅은 그녀의 노력과 꿈의 소산이자 금싸라기 같은 그녀의 모든 것 이었습니다.

산업발달로 인구가 한창 증가할 때인 1982년 충청북도교육청에서는 제천지역에 고등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부지 물색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이양남 할머니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의 전 재산인 제천시 신백동 182-3번지 임야 1만 8517㎡(현 공시지가 44억원 상당)를 제천여자상업고등학교 설립부지로 선뜻 내 놓아 세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자신의 못 배운 한을 손녀들의 교육을 토해 그 꿈을 이루시겠다는 것이었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제천상업고등학교 전신인 제천여자상업고등학교 설립부지를 기증해 주신 故 이양남 여사의 일대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故 이양남 여사는 88세를 일기로 1994년 7월 10일 타계하시어 우리학교 동편 작은 동산에 영면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여사님은 유족이 전무해 사후에 남은 재산에 대해 일가친척간에 복잡한 소송이 10여 년 간 진행되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이양남 여사의 유택지가 다른 사람의 소유로 전환되어 쉬시는 곳 마져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山主인 먼 친척을 찾아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며 간절히 부탁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학교에서는 구성원들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2009년 7월 31일 여사님의 묘소를 학교 구내로 천분하고 교사 서편의 양지바른 곳에 이양남 할머니의 작은 흉상을 세우며 기둥석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겨 님의 숭고한 뜻이 세세연년 이어지게 했습니다.

‘故이양남여사 께서는 1982년 3월 31일 이곳을 제천여자상업고등학교 설립부지로 희사하시어 오늘의 우리 학교가 있게 해 주신 고마운 교육독지가 이십니다.

가신님의 거룩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이어 받고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여기 여사님의 상을 세웁니다. 여사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배움의 동산 신원뜰에서 학생들을 굽어 살피시며 영원히 우리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작업을 마치고 이젠 아무 걱정없이 편히 쉬실 수 있는 할머니의 단아한 모습을 바라보니 나의 마음도 평안한 안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