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가느다란 바람에 못 이겨 춤을 추며 대지를 향해 내리는 날이었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동네는 무척이나 평화롭게 느껴지는 마을의 첫인상, 첫눈, 그리고 나의 첫 발령, 이 모두가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고 있었다.
7~80년대 시골마을이 그러했듯 저녁이면 집집마다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처절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이불 보따리는 우편으로 부쳐왔고 사과 궤짝은 찬장으로 둔갑해 그릇 세 네 개와 화장품을 전시하는 소꿉놀이는 시작되었으며 그때 화장지도 처음으로 사보았다. 
시골우체국에 처음으로 아가씨인 여직원이 온다는 소문이 동네에 이미 퍼져  마을주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터였다.
난방은 모두 아궁이에 나무를 때던 시절이라 나도 별 수 없이 불 때는 연습을 하며 눈물, 콧물로 씨름할라치면 연신 이웃집 아낙들이 흥미롭다는 듯 큰 웃음소리를 내며 고구마, 감자 등을 내어 주면서 “하루아침에 되는 감... 선생님들 한태 배워야지...암...” 하며 옛날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얻어 때는 땔감도 하루 이틀이지 드디어 손수레를 빌려 산으로 올라가자 도시에서 보낸 내 유년시절 동화책에서나 보았던 나무꾼으로 변해 있었다.  
작은 나뭇가지를 땔감으로 모으며 무섭고 적적해 부르는 노래는 산 속을 울리고 다시 메아리 되어 돌아오고 산새도 같이 울어댔다. 
가져간 점심을 따스한 햇살이 퍼지는 곳에 펼쳐 먹고 나니 이처럼 행복한 자 또 있을까... 
작은 나무들을 한 가득 싣고 나니 절로 미소가 번진다. 그 미소는 나의 용기와 갈망함을 이룬 내 신통함을 시인하는 웃음이었다. 
저녁노을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손수레는 무던히도 나를 힘들게 했다. 
짐을 풀어 마당가에 늘어놓으니 나의 업적이며 인내심이요 수확의 기쁨을 불을 지피기엔 너무나 아까운 존재들이다. 
동네에선 처녀 나무꾼이 생겼다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나무꾼은 어느새 새끼를 치기 시작해 우리 사무실 최양, 초등학교 이 선생이  처녀 나무꾼이 되려고 수레를 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땔감을 마련하고 나니 정월 보름이 되었다. 우체국에 발령을 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집에 가기도 그렇고 갈만한 곳도 없는 터라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준비해 나보다 어린 최양을 따라오게 해 밥을 얻으러 동네로 들어섰다. 
제법 커다란 집을 선별해 큰기침을 한번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밥 좀 주세요.” 하자 웬일인가 대 식구가 사는지 방방에서 죄다 고개를 내밀고 위 아래로 훑어보는 광경은 마치 낮선 나라에서 온 이방인을 구경하듯... 
“거 누구시오” 하고 제일 높으신 어른이 묻자 “아! 네 저는 우체국에 새로 발령받은 우양이라고 합니다.” 하고 미소와 함께 공손히 엎드리자 “소문 들었소.” 하며 오곡밥에다 나물까지 후하게 담아주셨다.  대문도 담도 없으니 부엌문이 잠길 턱이 없는 빈집에 가서 가마솥 뚜껑 열고 밥 한 그릇 퍼오고 오곡밥이 없는 집에 가서는 도리어 한 그릇 담아 부뚜막에 올려놓고 이집 저집 얻고 훔친 밥과 나물이 세 바가지, 그 중에 한바가지를 가지고 면온 초등학교 숙직실에 밀어 넣자 놀라움과 함께 폭소가 터졌다. 
면 출장소에 보름 선물로 안겨주고 나머지 한 바가지는 집배원들 돌아오기를 기다려 저녁만찬 나누는 보름세기였다. 
이런 밥 파문 사건과 함께 괴짜 처녀라는 간판부터 땄다.
소풍, 운동회, 마을체육대회 모두 불러주었고 우체부 아저씨 가방에서 사이다를 보내주셨다.  
모내기, 벼 베기 하는 논에 들어가 일 못 한다는 잔소리도 들어야했다. 
이제 머리를 볶고 허리가 큰 아줌마는 아이를 셋이나 둔 푼수 떼기로 변신했지만 여전히 이 마을에서 이십대 우양은 괴짜로 남아 옛날이야기처럼 전해진단다.
첫 눈을 맞으며 새해에도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 마을에 풍년 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