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성 범    전 제천교육장, 세명대 초빙교수

얼마 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진로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었다. 진로, 어쩌면 우리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진로선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로관련 책이나 강의 등을 보면 이른바 ‘모범이 되는 사람’ 즉 롤 모델을 만들라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롤 모델로는 주로 그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신 분들이다. 
이분들은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의 재능을 펼쳐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분들이다. 
이렇게 알려진 롤 모델을 통해 목표를 설정하고 꿈을  키울 수도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방안 등을 배울 수도 있다. 
이처럼 매스컴이나 각종 진로  강의에서 자주 언급되는 롤 모델은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았기에 칭찬을 받을 만하며 분명히 배울 점 또한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꼭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분들만을 롤 모델로 삼아야 할까 하는 마음이 든다. 
일례로 알베르트 아인쉬타인, 리처드 아이작 뉴턴 등은 누구나 알만한 성공한 과학자다. 
하지만 루크 하워드라는 과학자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루크 하워드는 충운, 적운, 권운 등 구름의 종류를 처음으로 분류한 19세기 영국 출신의 약제사라고 한다. 
약제사라는 직업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선택한 직업이다. 생계수단으로 약제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루크 하워드의 유일한 취미생활은 구름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 관찰기록은 ‘아스게시안 소사이어티’라는 작은 과학토론회에서 처음 발표됐고 그 뒤 구름의 다양한 모양을 분류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마련됐다. 
사실 그가 발견한 구름의 분류는 기상학적 측면이나 문학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성과이지만 그 성과만큼 그의 업적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그의 업적과 삶은 영국의 지질학자 리처드 힘즐린이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라는 책을 쓰면서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어쩌면 루크 하워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롤 모델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진로와 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현실적인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실과 꿈의 문제에서 균형을 잡았다는 점이 훌륭한 롤 모델이다. 루크 하워드는 약제사라는 직업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했다. 
자신의 꿈과 거리가 있었지만 약제사로 일하며 생활인으로 살았고 취미로 기상과학자의 일을 수행했다. 
또 자신이 품었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에서도 훌륭하다. 
유년시절부터 좋아했던 구름에 대한관심을 성인되고 약제사가 된 뒤에도 계속 버리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부딪히고 세상이 그의 열정을 알아주지 않았을 지라도 자신의 꿈을 절대 포기 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살아 있을 때 그의 업적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의미의 롤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라 생각이 든다.
그렇다. 현실은 성공한 극히 일부의 사람에게 수많은 조명을 비춘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보다 훨씬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도 그 능력이나 업적을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 있다. 
대중은 유명해지지 못한 열정과 노력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마라톤에 수천명이 참가하지만 영광은 우승자의 몫일 뿐이다. 누구나 일등하고 싶지만 일등은 결국 한 사람에게 만 주어진다.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명한 사람만 롤 모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성공한 그래서 주목을 받는 롤 모델들은 어쩌면 현실의 문턱에 서있는 청년이나 학생들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인물이 될 수 도 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기위치에서 자신의 꿈을 열심히 찾은 롤 모델은 우리 주변 가까이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아 고견을 듣고 서로 진실된 대화를 통해 미래의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진로선택에 큰 기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분들은 현실과 이상의 조화로운 삶을 살아오신 우리 주변 가까이 계시는 롤 모델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