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천지신명님, 우리 박달 도령님이 꼭 장원 급제하도록 도와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박달 도령님이 꼭 장원급제해야 이 소녀가 잘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빌고 비나이다. 우리 박달 도령님이 장원급제하여 어사화를 꽂은 사모(紗帽)를 쓰시고 소녀에게 달려 올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소녀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이렇게 비나이다. 비나이다.”

 금봉 낭자는 손바닥 손금이 지워질 정도로 박달 도령이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빌고 또 빌었다.

박달 도령이 뒷간에 가기위해 뒤꼍으로 가다가 금봉 낭자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비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일어 살며시 다가가 보았다.

자신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천지신명에 빌고 있는 낭자의 모습에 박달 도령은 그만 코끝이 찡하면서 가슴 한편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울컥하며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아, 금봉 낭자가 나의 장원급제와 금의환향을 위하여 지극 정성으로 천지신명에게 빌고 있구나. 너무나 갸륵하고 고마운지고. 내 꼭 장원급제하여 낭자의 정성에 보답해야하는데. 꼭 장원급제해서......’

박달 도령의 눈가에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더 이상 그 자리에 서있을 수가 없어서 살며시 뒷걸음질로 빠져나왔다.

 “천지신명님이시, 이 소녀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소서. 우리 박달 도령님이 이번 과거에서 장원급제하도록 굽어 살피소서. 이 소녀 이렇게 빌고 비나이다.”

박달 도령은 자신을 위하여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는 금봉 낭자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려 견딜 수 없었다.

 살며시 다가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기도하는 금봉 낭자를 차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박달 도령은 고향에서 자식의 금의환향을 위하여 가슴 졸이고 있을 늙은 어머니 생각에 그만 마음이 울적했다. 

 없는 살림에 자식을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박달 도령의 노모(老母)는 불철주야 농사일에 매달리면서 박달 도령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다. 아들이 큰 소리로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박달 도령의 노모는 힘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런 노모가 박달 도령이 어느 산촌에서 산골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한양가는 길을 지체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노모의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아아, 어서 여기를 떠나 한양으로 가야하는데…….'

박달 도령은 서서히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 쯤 한양에 도착하여 과거준비에 몰두해 있어야 했다. 아직 날짜가 남아 있어 그런대로 여유는 있지만 벌말에 발이 묶인 박달 도령은 답답했다.

금봉 낭자는 저녁을 일찍 해서 박달 도령에게 차려주었다. 부모가 들녘에서 오기도 전에 저녁을 차려 주고 열심히 공부하란 의미와 들에서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와 겸상을 하게 되면 박달 도령이 너무 시장할 것도 같고, 박달 도령이 불편할 것 같았다.

 “같이 들어요.” 

 “아니에요. 박달 도령님 먼저 드세요.” 

“아직 어르신이 들에서 안 들어오셨는데 먼저 들어도 되는 거요?” 

 “아버님께서 도령님이 먼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차려드리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드세요. 저는 나중에 아버님이 오시면 들게요.”

금봉 낭자가 상을 들이고 나가려고 하자 박달 도령은 금봉 낭자의 하얀 손을 살며시 잡았다.

 “고맙구려. 생면부지인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니 내 몸 둘 바를 모르겠소.”

수저를 들고 있던 박달 도령은 콧날이 찡해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도령님, 저희 집에 계시는 동안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공부만 열심히 하세요.”

 “고, 고마워요. 이 은혜는 꼭 보답하리다.”

금봉 낭자의 손에서 보드라운 감촉이 전해졌다. 과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여색(女色)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지만 금봉 낭자만은 예외로 하고 싶었다.

 “도령님, 많이 드셔요. 밥과 찬은 얼마든지 있어요.” 

“고마워요.”

금봉 낭자가 손을 빼며 어색해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박달 도령은 책을 읽다가 머리가 아프도 답답하여 바람을 쐬겠다며 물레방앗간 있는 쪽으로 갔다.

박달 도령은 금봉 낭자에게 부모님이 들녘에서 돌아오면 저녁을 차려드리고 나오라고 하였다.

콩이며 볏 집단을 지게에 지고 들에서 집으로 오는 동네 사람들이 박달과 마주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박달 도령의 뒤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심심산천에 말끔한 선비차림의 젊고 훤칠한 남자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장면은 여러 사람에게 자주 목격되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웅성거렸다.

 “저 사람이 금봉이네 집에 묵고 있는 서생이래. 과거보러 가다가 다리도 다치고 몸도 안 좋아 잠시 묵고 있다지?” 

“어머나, 얼굴도 보통 잘생긴 게 아니데. 그러다 금봉이하고 눈이라도 맞으면 어쩌려고?” 

 “호호호호. 그렇게 되면 금봉이 아버지는 훤칠한 사윗감을 보는 거지 뭐?” 

 “그럼. 그 동안 금봉이 뒤만 쫓아다니던 갑돌이 하고 수돌이는 닭 쫓던 강아지 신세가 되네 그려.” 

 “호호 호호호호........”

 “누가 알아? 벌써 금봉이와 눈이나 배꼽을 맞추었는지 모르지.” 

“하긴 고것이 도도하도 꽤나 눈이 높다지?” 

 “눈이 높으니 산골 머슴 같은 수돌이와 갑돌이가 금봉이 눈에 차겠어?” 

 “그런데 저 도령 너무 잘생겼어. 내가 말이라도 걸어볼까? 우리 언년이도 혼기가 꽉 찼는데......” 

 “아이고, 쇠똥 어멈도 주책이유.”

 “호호 호호호......”

작은 산촌에서는 박달 도령이의 일거수일투족은 큰 관심사였다.

 박달 도령의 풍채가 산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준수하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총각이라는 점이 더욱 동네 처녀들과 아낙들 관심을 끌었다.

금봉 낭자는 들녘에 나갔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자 저녁상을 준비하여 방으로 들였다.

며칠 사이에 딸애의 얼굴이 복사꽃보다 화사하게 핀 것 같아 금봉 낭자 어머니는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불안했다.

딸애가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박달 도령이 자신의 집에 묵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금봉 낭자 어머니는 짐작하고 있었다. 저녁을 들다말고 금봉 낭자 어머니는 남편에게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금봉이 아버지, 박달 도령은 언제 떠난 데요?” 

 “글쎄, 몸이 좋아지면 떠나겠지.”

금봉 낭자 아버지는 남의 이야기 하듯했다.

 “당신은 걱정도 안 되우? 다 딸년이 집 안에 있는데. 낮에 집에 둘만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우?”

  “어허, 일은 무슨 일? 금봉이가 어린애도 아니고 박달 도령은 과거준비에 여념이 없을 터인데 무슨 일이 일어난단 말이여? 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읍시다.”

금봉 낭자 아버지는 아내의 말에 시큰둥한 얼굴이지만 딸애에 대하여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도령은 곧 떠날 사람이에요. 다 큰 딸년을 둔 어미로서 걱정이 되어 그러우.”

금봉 낭자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남편에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허허. 그 사람, 별 걱정을 다하고 있네그려.”

금봉 낭자 아버지는 당연히 젊은 남녀가 같이 있으면 무슨 탈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체 하는 것 같았다.

금봉 낭자 어머니는 더 이상 박달 도령과 딸에 대하여 크게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곧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사람이 산골 처녀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금봉 낭자 어머니는 박달 도령이 어서 빨리 몸이 쾌차하여 한양으로 떠나가기를 바랐다.

 “어머니, 봉희네 집에 좀 다녀올게요.”

설거지를 마친 금봉 낭자는 부모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까지 아버지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해본 적 없는 착하고 순진한 산골 처녀 금봉 낭자였다. 금봉 낭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딸이 오히려 걱정이었다.

 “늦게까지 있지 말고 일찍 들어오너라. 그리고 금봉아, 이거 내일 박달 도령에게 달여 드리거라.”

 금봉 낭자 아버지가 딸에게 흰 종이에 싼 것을 건넸다. 작은 봉투 여러 개가 새끼줄로 묶여 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 이게 뭔데요?”

“응, 보약이다. 박달 도령이 얼른 몸이 호전돼야 과거를 보러가지.”

아버지의 박달 도령에 대한 각별한 정성에 그만 금봉 낭자는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를 위하여 보약을 사온 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금봉 낭자는 자신 보다 더 박달 도령을 마음에 두고 있는 아버지가 고맙고 든든했다.

 “고마워요. 아버지.” 

'고맙다고? 아니 저 얘가…….'

 금봉 낭자 어머니는 딸의 태도에 의아하면서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딸의 언행으로 보아 뭔가 박달 도령하고 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금봉 낭자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녀의 눈치를 살폈다.

 “얘야, 박달 도령은 어디 가셨니?”

금봉 낭자 아버지는 박달 도령이 묵고 있는 사랑채를 바라보며 딸에게 물었다. 

“저녁 드시고 나서 답답하다고 잠시 바람 좀 쐬고 오신다고 나가셨어요.”

 “그으래? 이런 산골에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도 울적할 테지. 과거 볼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아직 여기 머물러 있으니 답답할 게야. 금봉아, 네가 그 도령이 우리 집에 잠시 있는 동안이라도 잘 해드리거라.”

금봉 낭자 아버지는 마치 박달 도령이 사위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였다. 금봉 낭자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안도하면서 속으로 기뻐하였다.

 “아니, 당신도 참. 지금처럼 해주면 되었지 어떻게 더 잘해 주란 말이에요?”

금봉낭자 어머니는 편치 못한 심기를 드러냈다. 금봉 낭자의 부모는 금봉 낭자가 비록 무남동녀 이지만 산촌에서 보기 드물게 고운 여식이 산골에서 차차 혼기가 차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쩌다 동네에 대처에서 놀러오거나 마을에 친척집을 찾는 총각이 있으면 딸을 염두에 두고 관심 있게 보았다가 마음에 들면 그 총각의 신상에 대하여 꼬치꼬치 묻곤 하였다.

- 계속 -

* 본 소설은 “울고넘는 박달재”에 전해내려 오는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슬픈 사랑이야기 입니다. 지난 이야기는 본지의 홈페이지 http://www.jcnews.co.kr 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