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아아, 도령님 - .”

달빛이 물레방앗간을 환하게 비추면서 서서히 서녘으로 달렸고, 잠들지 못한 산새들도 짝을 지어 밀어를 속삭이느라 자주 새소리가 들리곤 하였다.

생전 처음 남자를 받아들이는 금봉 낭자는 지금의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박달 도령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금봉 낭자는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금봉 낭자는 천둥이 친다고 생각하였고 두 눈을 차마 뜰 수 없어 질끈 감아버렸다.

금봉 낭자는 한 마리 싱싱한 물고기로 변해 있었다.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헤엄치며 물살을 가르던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배 위로 올라왔을 때처럼 금봉 낭자는 팔딱거리는 한 마리 은어였다.

 어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은어는 더욱 세차게 팔딱거리며 금방 숨이라도 넘어갈 것 같았다. 비늘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면서 은어의 몸부림은 더욱 세찼다.

 어부의 뜨거운 욕망에 은어는 소금에 반쯤 절여진 물고기가 되어 축 늘어져 있었다.

좁은 물레방앗간 안에서 비가 내리고 천둥소리가 요란하면서 희열과 벅차오르는 감정에 끈적끈적하고 긴 몸부림은 이어졌다.

 “아아, 도령님. 소녀 이대로, 이대로 영원히 숨이 멎고 싶어요. 도령님-.”

 “낭자, 나도 마찬가지요. 세상의 모든 공명(功名)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그대와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답니다.”

 “도령님-.”

 뜨겁고 끈적끈적한 입맞춤이 오래 이어졌다.

달은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나올 줄 몰랐고, 은하수를 흐르던 수많은 별들도 수줍어 잠시 반짝거리던 모습을 숨겼다.

물레방아 뒷산에서는 수꿩이 암꿩을 품는 소리가 길에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물레방아간을 돌아 졸졸거리며 흐르던 계곡물 조차 조용히 흐르며 두 사람의 만남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길게 이어졌다.

 금봉 낭자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서 달콤하면서도 가슴시린 시간을 보냈다.

밤이슬이 촉촉이 내리는 늦은 밤 달은 서산으로 기울고, 별들조차 졸음에 겨워 하나 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사내의 조용하면서도 열정적인 몸짓을 금봉 낭자는 정성을 다해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처음으로 맞는 사내의 열정이었지만 금봉 낭자는 꿈속에서 이전부터 자주 맞았던 터라 스스럼없었다.

 “아아, 박달 도령님. 소녀, 이제 도령님을 정인(情人)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제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오로지 도령님 한 분만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저를, 저를 끝까지 인해해 주셔야 해요. 박달 도령님.” 금

봉 낭자는 무의식중에서도 거의 흐느끼는 음성으로 사랑의 희열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음성은 심하게 떨리면서도 차분하였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맙소. 나 또한 지금 이 순간 이후부터 그대를 내 가슴 속 깊이 담겠소.”

박달 도령이 금봉 낭자를 세게 안아 주자 금봉 낭자는 감격해 했다. 젊고 뜨거운 몸짓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산촌의 물레방앗간은 서서히 열락으로 치닫고 있었다.

두 사람이 물레방앗간을 나왔을 때 사방은 어두컴컴해 아무 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금봉 낭자가 앞장서서 부리나케 걷고 박달 도령이 두리번거리며 금봉 낭자의 뒤를 따랐다.

 다음 날 해가 거의 중천에 있을 때 박달 도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봉 낭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침 일찍 들녘으로 나갔고 금봉 낭자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박달 도령이 눈을 비비며 사랑채 문을 열고 나오자 박달 도령이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듯 금봉 낭자는 화사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마루에 세숫대야가 놓여 있었다.

 “도령님, 편히 주무셨는지요?” 볼이 발가스름한 금봉 낭자가 수줍게 웃었다.

 “덕분에 아주 잘 잤어요. 그런데 간밤에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박달 도령은 간밤에 예기치 못했던 일을 떠 올리며 무안한 얼굴이었다. 금봉 낭자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했던지 자꾸 헛기침만 했다.

 “아닙니다. 박달님, 소녀가 원한 일이었습니다. 너무 괘념치마세요. 어서 세수하시고 들어가세요. 얼른 아침상들이겠습니다.”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서는 금봉 낭자의 모습이 귀여워보였다.

박달 도령이 세수를 하고 다시 사랑방으로 들자 금봉 낭자가 금방 아침상을 들고 들어왔다.

밥상 위에는 어제 저녁 때하고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갈한 밥과 산촌에서 보기 힘든 여러 가지 반찬들이 박달 도령의 식욕을 자극 하였다. 박달 도령이 상을 내려놓고 방을 나가려는 금봉 낭자의 손을 잡았다.

 “어머나. 도령님, 어서 아침 드시지 않고요?”

 금봉 낭자는 짐짓 문 밖을 주시하는 체 하였다. 그러나 집에는 두 사람 말고 아무도 없었다.

 “아니오. 그대를 바라만 보아도 나는 배가 부르오.”

박달 도령이 가냘픈 금봉 낭자의 손을 잡고 금봉 낭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치 무엇을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도령님, 어서 아침 드셔야지요. 국이 식겠어요. 어서요.”

금봉 낭자가 박달 도령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박달 도령은 슬며시 손에 힘을 주었다.

 “자, 이리와요.”

박달 도령이 금봉 낭자의 나긋한 손을 잡아끌었다. 아직 박달 도령의 온기가 남아있는 이부자리였다.

박달 도령이 금봉 낭자를 이부자리에 눕혔다. 박달 도령의 의중을 파악한 금봉 낭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박달 도령님, 아침인데......”

금봉 낭자가 입에 손가락을 물고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박달 도령은 개의치 않았다.

 “밤이면 어떻고 아침이면 어떻소? 내 그대를 인애하는데 무엇이 걸림돌이 된단 말이오?”

집안에는 두 사람 말고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박달 도령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혼기가 찬 여식과 과객을 남겨둔 채 들녘으로 나간 금봉낭자 아버지는 은근히 딸과 박달 도령이 사이에 어떤 미묘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아, 박달 도령님 -”

 “금봉이, 내 죽는 날까지 그대를 잊을 수 없을 거요. 절대로 잊지 않을 거요.”

 “도령님, 진정이시지요?”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소?”

 “내 과거에 급제하면 제일 먼저 그대를 보러 올 것이오.”

 “소녀, 도령님만 믿겠습니다. 소녀, 이제부터 도령님이 소를 돼지라고 하신다면 그리 알겠습니다. 소녀를 잊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절대로요.”

 “걱정 마오. 내 어찌 그대를 잊을 수 있단 말이오.”

 물레방앗간에서 주변에 신경을 쓰면서 치르던 일에 비하면 이부자리가 깔린 사랑채에서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는 금방 한마음이 되었다.

금봉 낭자는 몸을 비틀면서도 싫어하는 내색이 없었다. 박달 도령의 입김과 따뜻한 손길이 닿았을 때 금봉이는 전율(戰慄)하면서 이 순간이 꿈이 아니기를 속으로 빌고 있었다.

분명히 꿈이 아니었기에, 꿈속의 임이 현실에 나타났기에 금봉낭자는 기쁨의 눈물로 박달 도령을 받아들였다.  

 “아아, 도령님, 소녀,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어요. 영원히......”

사내의 거칠면서 부드러운 율동이 사랑채를 금방 도가니로 변하게 하였다. 물레방앗간에서 비록 금봉 낭자가 사랑의 희열을 얼마나 느꼈는지 모르지만 간밤의 열정과 기쁨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성스러운 두 사람의 몸짓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면서 서로의 진실한 믿음과 신뢰를 쌓아갔다.

박달 도령이 용암을 토해내자 금봉 낭자는 그 불덩이를 삼켰다. 그 불덩이는 너무나 뜨거워 두 나신(裸身)은 동시에 활활 타오르면서 열락으로 이르는 길로 접어들었다. 꿀 맛같은 여운이 길게 이어졌다.  

 “도령님, 혹시 고향에 처자식이 있는 건 아니신지요? 그냥 노파심에서 여쭤보았습니다. 너무 개의치마세요.”

 “아니, 미장가인 나에게 어찌 처자식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아무 염려하지 마오. 내 장원급제하면 제일 먼저 그대에게 달려올 것 이오. 이제부터는 내 가슴속에도 그대만 자리할 뿐이오. 다른 여인은 누구도 내 가슴 속에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비록 이 나라 공주가 들어온다하여도 나는 받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요.” 

 “도령님, 정말로 고마워요. 소녀,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오릅니다.”

 “사랑하오.”

박달 도령이 다시 금봉 낭자의 입술을 지그시 누르자 금봉 낭자는  박달 도령의 행동에 살며시 응해주었다.

뜨겁고 끈적한 정염의 시간이 포근한 이부자리 위에서 머물고 있었다. 

 “아아-, 박달 도령님 -.”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한 남녀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동안 열락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서 꿩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달 도령은 감기 기운이 있다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대고 며칠 더 머물기로 마음먹었다. 금봉 낭자의 부모가 들녘으로 나가고 나면 두 사람은 붙어서 지내다 시피 했다. 금봉 낭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농사일에 바빠서 두 사람 사이를 신경 쓸 여유가 별로 없었다.

이웃집 아낙들은 점점 이상한 시선으로 금봉 낭자의 집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한 두 여인네들이 금봉 낭자 이야기를 꺼내자 몹시 궁금해 하더니 동네 아낙들이 몰려 들었다.

"개똥어멈, 소문 들었수?”
 “뭔 소문?”

 “금봉이네 집에 과객이 한 사람 들었는데 키고 크고 인물도 출중하다고 하는데 아마 과거보러가는 유생이라고 하지?”

 “그래?”

 “그런데, 낮에는 금봉이 아버지 어머니가 들에 나가고 없는데 이상 없을까?”

 “이상이라니?”

 “이 여편네야, 한창 나이 남녀가 붙어있으면 무슨 사단이 나도 날거아녀?”

 “금봉이는 몸가짐이 조신한 애인데 설마 그럴 리가?”

동네 아낙들은 모이면 금봉 낭자네 집을 바라보며 입방아를 찧어댔다. 소문은 금방 입에서 입을 타고 동네에 퍼지게 되었다. 

 박달 도령은 아무리 아름다운 산골처녀 금봉 낭자에게 잠시 미혹되어 마음을 빼앗겼다 해도 과거를 보러가는 입장이어서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봉 낭자와  금봉 낭자 아버지의 지극한 간호로 다친 부위도 어느 정도 나아 이제는 걷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박달 도령은 다급해진 마음에 식사를 마치면 사랑채에 앉아 책을 읽곤 했다.  

    子曰(자왈) 巧言令色(교언영색) 鮮矣仁(선의인). 曾子曰(증자왈)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 爲人謀(위인모) 而不忠乎(이불충호)
    與朋友交(여붕우교) 而不信乎(여불신호) 傳不翌乎(전불익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교묘하게 꾸민 말과 보기 좋게 꾸민 얼굴빛에는 어진
    마음이 드물다. 증자가라사대 말하길 나는 내 자신을 매일 세 번씩 반성한다.
    남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정성을 다 하였든가, 벗들과 함께 서로 사귀는데
    신의를 다하였든가, 전수 받은 가르침을 반복하여 익혔든가.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몰래 박달 도령이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금봉 낭자는 공상에 빠져있었다.

 박달 도령이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어사화를 사모(紗帽)에 꽂고 벌말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는 아름다운 상상을 하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박달 도령이 집에 기거하면서부터 금봉 낭자는 꿈과 현실을 구별하기 힘들었다. 현실의 임이 꿈속의 임이 틀림없으니 어떤 처녀든 금봉 낭자의 입장이 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박달 도령님은 꼭, 꼭 장원급제하실 거야. 그래서 나는 이 산촌을 떠나 박달 도령님을 따라 한양에서 멋진 삶을 살아야지.’

박달 도령이 집에 머물면서 금봉 낭자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금봉 낭자는 아버지가 불러도 어떤 때는 듣지 못하고 공상에 빠져 먼 하늘만 바라보곤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금봉 낭자가 박달 도령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금봉 낭자는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박달 도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자신의 집에 있는 동안 정성을 다하여 뒷바라지 하였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금봉 낭자는 자신도 박달 도령의 장원급제를 위하여 천지신명께 빌어보기로 마음먹고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서 올려놓고 빌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박달 도령을 돕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 계속 -

 * 본 소설은 “울고넘는 박달재”에 전해내려 오는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슬픈 사랑이야기 입니다. 지난 이야기는 본지의 홈페이지 http://www.jcnews.co.kr 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