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제천교육장, 세명대외래교수 이 성 범

며칠 전 이른 저녁 오후 나와 안식구, 사위, 딸 , 8살 손자, 4살 손자 녀석과 함께 우리 제천의 가장 명소인 의림지와 연결해 모든 시민이 즐겨 거닐 수 있도록 잘 조경된 초록의 삼한길이라 명명해 놓은 산책로를 걸었다.
길가의 양쪽 소나무와 철쭉을 비롯한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산책 나온 시민들을 반겨 줄 뿔 만아니라 특히 도로가 고운 흙으로 다져져 있어 흙의 향기를 맡으며 온 가족들이 사랑을 나누기에는 참으로 알맞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거닐며 좋아하는 손주 녀석들을 보니 이것이 작은 행복이 아닌가 하고 느껴진다.
좀 떨어져 가노라면 4살 난 손주녀석은 빨리 할아버지 할머니 어서오라고 연실 뒤를 바라보며 손짓한다.
하는 모양이 귀엽고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 그지없다.
그래, 알았다고 하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가니 곧장 식구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손주녀석들은 마음이 놓였는지 앞으로 뛰어가며 소리를 내며 춤을 추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애들 엄마가 8살 난 손주 녀석에게 묻는다.
오늘 기분이 어때요? 그러니 그녀석은 거리낌 없이 말한다. 아주 기분이 좋아요.
그러자 애들 엄마는 그래, 옆에 예쁜 꽃이 있으니까 기분이 좋은 거야 하니 그녀석이 하는 말, 엄마, 예쁜 꽃이 있어 기분이 좋은 것은 맞지만 더 좋은 것은 우리 온가족이 함께 있으니까 좋은 거예요 하며 말하지 않는가.
우리 어른들은 처음으로 듣는 말이다.
한참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초등학교 1학년이니까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아참, 대단하다. 그래 맞아. 사랑하는 우리 온 가족이 같이 있으니까 기분이 더 좋은 거야 하며 애들 엄마가 다시 그 녀석에게 되짚어 주곤 한다.
문득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들은 옛날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곤 한다.
세탁기가 없어서 빨래를 솥에 넣고 삶은 후에 물에 행구며 빨래를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 집에서 어린 며느리를 보았는데 아직 일이 서툴러서 시아버지 옷을 삶다가 그만 시커멓게 태워 버렸다.
이건 보통 낭패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나이어린 며느리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를 본 신랑이 아내를 달래며 말했다.
“여보,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 내가 게을러서 물을 길어다 놓지 않은 탓이요”
옆에 있던 시어머니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라 내가 눈이 어두워서 솥에 물을 충분히 채워 주지 못하였구나”
멀리서 지켜보던 시아버지가 다가오며 말했다.
“내가 근력이 부쳐 장작을 굵게 쪼개 놓았더니 불길이 너무 강했나 보구나”
화목하기로 소문난 이 가정은 세월이 지나면서 부자로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런가하면 한창 정치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루스벨트는 39세 때에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려 휠체어를 타야만 했다고 한다.
그때 절망에 빠진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 엘레나 여사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어느 날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정원을 산책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비가 온 뒤에는 이렇게 맑은 날이 찾아오네요.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뜻하지 않게 다리는 불편해 졌지만 당신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여보, 조금만 더 힘을 내요”
“하지만 나는 이제 영원한 불구자요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겠소?”
“아니,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사랑했던 것은 당신의 다리뿐이었다는 말인가요?”
아내의 말에 루스벨트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몸으로 대통령에게 당선되어 뉴딜정책으로 공황을 극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이 되었다.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함에도 가족이란 늘 가까이에서 마주 보며 함께 생활하는 사람인지라 흔히 소중함을 잊고 지내기 쉽다.
하지만, 일례로 어느 순간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 곁에 없는 삶을 상상하면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끼게 된다.
만약 서로 바라보고 지켜주며 마음의 의지가 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 속에 홀로인 것처럼 외롭고 공허할 뿐만 아니라, 살아야 할 의미마저 사라질 것이다.
비록 무심하고 뚝뚝한 남편이나 바가지와 잔소리꾼의 아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그늘이자 마음의 버팀목인 아내와 남편이란 이름은 세상 속에서 당신이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버팀목이요 힘의 원천이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가족사랑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난을 풍요로움으로, 어둠을 밝음으로, 실망과 좌절을 희망으로 인도하는 등불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의 등불이 꺼지지 않을 때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사회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고귀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5월! 가정의 달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모두 가장 아름다운 가족의 꽃을 마음껏 피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