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잔디와 연분홍 철쭉꽃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제천의 세명대학교 캠퍼스에서는 지난 4월 20일 설립자 고 민송 권영우 박사의 10주기를 추모하는 ‘민송 백일장’이 열렸다.

전국 중ㆍ고ㆍ대학ㆍ일반부를 대상으로 3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시와 수필로 나눠 저마다의 글 솜씨를 뽐냈다. 모두가 가장 궁금해 하는 제목이 무엇인지 숨을 죽이며 기다렸는데 발표된 제목은 너무나 평범한 ‘나무’였다.

제목이 발표되자 또다시 숨을 죽여여만 했다. 평범한 제목이라 누구도 쉽게는 쓸 수 있겠으나 평범한 가운데 개성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어쩌면 글 쓰는 이들의 고뇌 또한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드넓은 캠퍼스와 젊은이들의 꿈을 키워가는 대학교의 조경도 아름다웠지만 그에 못지않게 곳곳의 벤치에서, 그런가하면 고즈넉한 숲속에서 중ㆍ고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게 그려나가는 그들의 모습 또한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한 폭의 그림이요, 아니 우리미래의 실체인 것 같아 너무나 대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자기표현은 상대방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져옴은 물론 이로 인해 삶의 생동감을 가져옴은 물론 자신 개개인에게 저마다의 자존감을 더욱 신장시켜주어 매사에 자신감을 가져오게 한다.

더구나 글은 의사소통을 넘어 더 진한 감동이 서려있다.

글은 체험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체험을 통해 무엇을 창조하는 행위다.

우리의 글쓰기는 궁극적으로 생각을 창조하고 행동을 창조하는 데 있다.

체험한 만큼 삶을 향유하고 세계를 소유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글을 쓰기위해서는 먼저 넓은 통찰력과 깊은 사고력 그리고 독특한 개성을 바탕으로 한 남다른 사고의 확산과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글 쓰는 이들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위해서 일상적인 언어사용을 뛰어넘어 문학의 장르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여 감칠맛 나는 작품을 생산해야 한다.

이러한 글쓰기는 그 짝을 이루는 글 읽기와 마찬가지로 인간 문화의 오랜 유산과 전통 속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것은 상당히 거창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글쓰기를 두고 조금이나마 고심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납득하기가 어렵지 않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어휘에서 구성에 이르는 글쓰기의 모든 실제적 문제에서 많은 제약 아래 놓여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휘를 적절히 선택했는가, 진술이 문법에 맞는가, 문장 간에 호응이 되는가, 구성이 짜임새가 있는가 하는 식의 고민거리는 글쓰기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체계에 대한 의식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의식과 생활을 제약하는 관습들을 스스로 의식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던 관념이나 개념이 글 쓰는 동안 문득 미심쩍게 여겨져 회의 빠진 경험을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했을 것이다.

더욱이, 글쓰기는 문화적 관습들을 반성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것들과의 관련 속에서 말하는 나, 생각하는 나, 창조하는 나를 형성하게 해준다. 이처럼 글쓰기의 능력은 새롭게 문화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힘이 된다.

그러함에도 전자 매체는 무엇보다도 재래의 인간 문화를 지배한 문자 기록의 권위와 기능을 급격히 위축시키고 있다.

하지만 전자 매체의 발전이 문자 활동의 폐기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은 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등 영상매체가 널리 보급된 디지털시대에도 글쓰기가 여전히 중요한 표현 및 소통의 수단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성행하고 있는 컴퓨터 통신은 오히려 글쓰기에 대한 필요와 수요를 확대시킨 측면마저 있는 것이다.

전자 매체의 성장이 바로 문자 활동의 종말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그날 저마다의 아름다운 감성과 지혜로 구슬땀을 흘리며 원고지를 메워 나가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글쓰기는 매력적인 나를 가꿔가는 노력의 일부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